지난밤 과음으로 숙취에 시달릴 땐 두통과 메스꺼움이 동반된다. 내일을 잊고 마신 어제의 혹독한 대가다. 이런 날 ‘해장국’은 생명수 같은 역할을 한다. 간혹 ‘해장술’을 권하는 술꾼들도 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간 건강을 해치는 매우 위험한 행위다.
그런데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해장술도 존재한다. ‘블러디 메리’. 이름만큼 첨가물도 미심쩍은 블러디 메리의 레시피는 대략 이렇다. 토마토 주스, 검정 통후추, 타바스코, 우스터 소스, 소금, 거기에 보드카. 취향에 따라 레몬 주스와 올리브 또 셀러리까지.
‘괴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블러디 메리는 100여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클래식 칵테일이다. 재료 하나로 명칭이 바뀌는 클래식 칵테일 세계에서 유일하게 변주가 가능한 음료기도 하다. 몰트 바에서 처음으로 블러디 메리를 접한 손님 중 8할은 제조 과정에서 눈을 의심하고,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각종 향신료에 뒤덮인 짭짤한 토마토와 피클 주스 같은 오묘한 맛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는 토르가 숙취 해소를 위해 블러디 메리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블러디 메리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금주법이 시행되고 1년 뒤인 1921년, 프랑스 ‘해리스 뉴욕 바(Harry’s New York Bar)’의 ‘페르낭 페티오’라는 바텐더가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그는 알코올을 섞은 토마토 주스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약간의 우스터 소스로 감칠맛을 낸 음료를 만들었다고 한다.
최초의 이름은 ‘버킷 오브 블러드(Bucket of Blood)’였다. 업장 내에서 일어나는 칼부림이나 폭력 사태 이후 바닥의 피를 닦은 물을 버킷에 담아 버리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그 과정에서 매번 치마가 붉게 물들던 여종업원 메리의 이름을 따서 술 이름을 블러디 메리로 지었다는 설이다. ‘피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개신교 신자들을 화형에 처한 영국 메리 1세 여왕의 별명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블러디 메리를 1927년 뉴욕 출신 배우 겸 코미디언 조지 제셀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전날 마신 샴페인이 과했는지 바텐더에게 ‘숙취 해소’ 음료를 주문한 것이다. 바텐더는 장난 삼아 그에게 먼지 쌓인 보드카를 건넸고 제셀은 보드카에서 나는 ‘썩은 감자’ 냄새를 없애기 위해 우스터 소스와 토마토 주스를 사용했다는 것.
정확한 기원이 어떻든 1933년, 페르낭 페티오가 만든 레시피는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킹 콜 바’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 다소 싱거웠던 레시피는 검정 통후추, 타바스코 소스, 레몬, 우스터 소스 등을 첨가해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했다. 제셀이 보드카와 토마토, 우스터 소스 조합을 발견했다면 페티오가 각종 향신료를 더해 오늘날의 블러디 메리를 만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바에서 블러디 메리를 주문했을 때, 바텐더가 맞는지 재확인할지도 모른다. 아마 한두 모금 마시고 방치되거나 ‘맛있게’ 다시 만들어 달라는 민원에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토마토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만 없다면 용기 내서 주문을 해보자. 틀림없이 취향이 갈리는 음료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숙취 해소는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