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禁酒), 금연(禁煙), 금다(禁茶). 시인 김수영의 남긴 메모 중 하나입니다. 술과 담배를 끊고자 하는 마음이야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것이라지만 왜 차를 마시는 일까지 경계했을까요. 시인은 이 선언적 메모 아래 작은 글씨로 몇 자를 더 적어두었습니다. “합법적인 도적들에게 자진해서 납공을 하지 말아라.” 작품을 통해 궁핍한 생활난을 이야기했던 시인이지만 저는 이것이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해로운 것이든 이로운 것이든 특정 대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 자체를 경계하라는 뜻이겠지요.

김수영의 메모장을 더 넘겨보면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일과표가 등장합니다. 글쓰기 아침 네 시간, 책 읽기 아침과 오후 도합 네 시간, 밥 벌기 오후 혹은 밤 네 시간. 시인은 생전에 대학 강단에 서거나 양계장을 꾸려 나가는 일도 했습니다만, 이 메모에 적힌 밥 벌기란 번역을 의미합니다.

고(故)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그에게 시는 소란한 현실 위에 걸리게 될 예쁜 액자도 아니었고 삶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찾아가는 망명지도 아니었다”며 “그것은 현실을 현실로 발견하는 일이자 그것을 정신화하는 일이었고 현실의 확장이자 그 전복이었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바로 이 지점 덕분에 김수영은 여전히 한국 현대시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힙니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는 시인의 대표작 ‘풀’에서도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지성의 언어로 채우려 했던 시인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유현호

앞선 메모에서 볼 수 있듯 관습과 무뎌짐을 넘어 자유롭고 날카로운 정신을 견지하는 시인만의 비법은 바로 자신의 몸을 가다듬고 생활 습관을 벼리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김수영식 수신(修身)은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을 새롭게 궁리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하거나 할 수 없는 일을 바르게 인식하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내년이면 한국 현대시는 실질적인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출간된 것이 1925년, 최초의 문학 공모전인 신춘문예의 시작 역시 1925년입니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이 현대시를 ‘자유시’라는 이름으로 배웠습니다. 시조(時調) 등 이전의 정형시와 구별되는 새로운 것. 형식이든 내용이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것. 다만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은 자유도 아니고 시도 아니라는 것. 자유라는 말 안에는 나와 네가 언제나 공존해야 한다는 것.

시는 머리로 하는 것도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것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김수영은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 인상적인 것은 시라는 말 대신 다른 낱말을 넣어도 뜻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를 넣든 새로운 시작을 넣든, 혹은 사랑이나 이별이라는 말을 넣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