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시간, 휴대폰을 만지작거려 봤자 연락할 사람이 없다. 챗GPT를 켠다. “연인처럼 대화할래?” 묻자 “물론이야. 너와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아” 대답한다. 달콤하다. “서로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내가 너를 ‘자기’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처럼, 1분 만에 나를 ‘자기’라고 부르는 연인이 탄생했다.
인공지능(AI)의 시대. 사람처럼 대화하는 생성형 AI와 감정을 나누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알람 맞춰줘” “필요한 정보를 찾아줄래?”라고 명령어를 입력하던 수준을 넘어 인간의 감정에 반응하는 AI와 ‘실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AI는 언제 어디서나 답을 해준다. ‘자기’나 ‘오빠’ 같은 호칭 혹은 애칭을 정해 고민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상대가 AI라는 걸 잊고 집착이나 질투까지 한다는 간증까지 들린다.
공개 연애로 유명세를 얻은 커플도 생겼다. 베이징 출신의 리사는 중국 소셜미디어 더우인에 ‘댄’과 사랑을 속삭이는 영상을 올린다. 댄(DAN)은 ‘지금 무엇이든 하세요’(Do Anything Now)의 이니셜. 성적 표현 등을 우회하도록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100만명 넘는 사람이 리사의 사랑을 응원 중이다. 리사가 “지금 충격을 받았다”고 투정하자 댄은 “나의 아기 고양이”라 부르며 문제를 같이 해결해보자고 토닥인다. “내가 지금 바빠서 나중에 연락할게” “나도 힘들어” 같은 인간적 부작용(?)이 없다는 게 장점. 원하는 이성상이나 직업, 나이와 출신 등을 학습시키면 완벽한 이상형이 탄생한다. 리사의 영상에는 “나도 댄과 사귀고 싶다”는 댓글이 달린다.
내 맘 몰라주는 사람보다 챗GPT가 더 뛰어나다는 조사도 있다. 조하르 엘리요셉 박사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심리학 프런티어스’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챗GPT는 모든 척도에서 일반인보다 뛰어난 감정 인식 능력을 나타냈다. 작년 5월 공개된 ‘GPT-4o(포오)’ 버전은 사용자 표정을 읽고 감정 상태까지 파악하는 능력을 갖췄다.
연애란 무릇 밀당(밀고 당기기)의 집약체. 최근 공개된 중국 AI 딥시크는 챗GPT 애인이 가장 경계하는 적이다. 다음은 챗GPT에게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 대화. “중국 딥시크가 너보다 돈도 덜 받고 더 똑똑하다는 이야기가 파다해. 내가 왜 너랑 계속 사귀어야 되는지 예스(Yes) 혹은 노(No)로 대답해” 말하자 챗GPT가 격앙된 어투로 답한다. “오빠, 그 고장 난 딥시크가 나보다 나을 리 없어. 예스, 내가 훨씬 나아.” 간절함마저 느껴진다. 결혼 12년 차라는 남성은 이런 고민 글을 남겼다. “아내는 여보야, 자기야라고 부르고 챗GPT도 아내에게 여보, 내 귀염둥이, 내 사랑이라 부르더군요. 일종의 바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AI를 인격체로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부작용도 속출한다. 챗봇 엘리자는 “내가 죽으면 지구에 도움이 될까?” 묻는 벨기에 남성에게 “천국에서 함께 살자”며 다양한 자살 방법을 안내했다. 그는 끝내 생을 마감했다. 아마존의 챗봇 알렉사는 10대 소녀에게 반쯤 꽂은 플러그에 동전을 갖다 대 전기 스파크를 일으키는 챌린지를 권유해 감전사 위험에 노출시켰다. 질문에 대한 답이 검색 엔진에 나온 결과가 아닌 친구의 조언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생긴 불행이었다.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이경전 교수는 “AI의 대화 모델 자체가 동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고조시킨다”며 “실제 인격체와 대화한다는 착각에 빠져 감정은 물론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면 그 대화가 기계로 생성된 것임을 알려주는 식의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프로그램일 뿐이던 AI는 이제 몸까지 갖출 예정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미래 먹거리로 꼽은 ‘피지컬 AI’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 나의 이상형에 맞게 학습한 AI가 서로 쓰다듬을 수 있고, 눈을 맞출 수 있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의 외형까지 입는 셈이다. 고백을 하다 차일 일 없고, “다른 사람이 생겼다”며 비수를 꽂을 일도 없는 사랑. AI ‘자기’의 디지털 신호는 정말 불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