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에 명태를 들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웬 명태? 현관 입구에 걸어 둔단다. 집안 곳곳을 온통 명태로 꾸미는가 하면, 집들이나 개업 선물로 명태 한 마리를 들고 가기도 한다. ‘액막이 명태’라고 부른다.
명태가 인기다. 먹기 위한 명태가 아니라 걸기 위한 명태다. 말린 것(북어)만 건다고 생각하면 오산. 인기에 힘입어 천으로 만든 인형이나 나무를 깎아 모양을 내거나 도자기로 빚거나 아무튼 여러 모양의 명태가 등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액을 막아주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데.
◇광기 어린 눈까리~
“눈까리에~ 은은한 광기가 귀여워요” “온 집안에 명태의 맑은 기운이” “명태를 걸고 잔병치레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명태 장식을 산 이들의 구매 후기다. 소재는 폭신한 천. 3만원대, 성인 손바닥만 한 크기에 알록달록 파격적인 줄무늬를 가진 이 핸드메이드 명태 인형은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한때 전체 판매 랭킹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 ‘취업운 명태’ ‘애정운 명태’ ‘재물운 명태’ ‘귀인운 명태’ 등 목적에 따라 줄무늬 색이 다른 것이 특징. 예약이 밀려 지금 주문해도 내달 14일이나 돼야 출고된단다.
건강을 기원하는 이들은 편백나무를 깎아 만든 기능성 명태를 찾는다. 나쁜 기운을 쫓는 건 물론, 가득한 피톤치드로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색이 바뀌는 모빌 겸용 ‘자개 명태’, 흙으로 빚어 구웠다는 ‘도자기 명태’, 벌집에서 추출한 왁스로 만들었다는 ‘밀랍 명태’…. 소재도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명태라기보다 붕어빵(?)을 닮은 녀석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름은 명태다. 오죽하면 ‘명태 오브제’라는 말까지 등장.
심지어 직접 만들기도 한다. ‘프랑스 자수로 만드는 액막이 전통 북어(즉 명태)’라며 각종 재료를 이용해 직접 만드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한다. 헷갈리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명태는 부르는 지역이나 조리 방식, 건조 방법 등에 따라 호칭이 다양하다. 말리면 북어, 얼리면 동태, 말리거나 얼리지 않으면 생태, 말리긴 말리는데 덕장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 황태, 4~5마리를 한 코에 꿰어 말리면 코다리, 하얗게 말리면 백태, 검게 말리면 흑태…. 끝나지 않는 노래 같지만 호칭을 종합하면 50가지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액막이와 액받이 역할
이쯤에서 드는 의문. 왜 명태인가? 고등어도, 갈치도, 광어도 있는데 왜 하필. 예부터 명태는 “액운을 막아 준다”고 여겨졌다. 큰 눈과 입이 특징인 명태의 생김새 때문이다.
‘밝을 명’과 ‘클 태’, 명태(明太)라는 이름은 ‘눈이 맑고 빛나는 생선’이라는 생김새에서 유래했다. 명태의 큰 눈은 감시와 보호의 역할을 하며 집안에 들이닥칠 수 있는 나쁜 기운을 미리 감지해 막아주고, 큰 입이 집안에 들어오는 나쁜 기운이나 잡귀를 모두 삼켜 없애 버린다는 것이다. 액막이와 액받이 역할을 모두 하는 셈이다. 그리하여 큰 눈과 두툼한 입을 강조한 제품이 대다수.
명태를 묶어 거는 명주실에도 의미가 있다. 명주실에는 길한 기운을 불러오는 힘이 있어, 더욱 강력한 액막이 효과를 발휘한다고.
이 때문에 “사고를 막아 달라”는 소망을 담아 차량 안에 걸거나 열쇠고리 형태의 명태 액세서리를 가방에 달고 다니기도 한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전통 소재로 만들었다는 친환경 가방에 액막이 명태 키링을 단 굿즈를 출시했다. 정가 2만7000원짜리인 이 가방은 최근 해가 넘어가며 다시 인기를 끌어 웃돈을 얹어 거래되고 있다는 후문.
비슷한 의미를 가진 물고기로는 잉어가 있다. 붉고 때로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잉어의 비늘이 재물운을 올려 주고 부귀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것. 특히 검은 잉어는 액운을 막는다고 여겨졌단다. 다만, 단단한 북어 형태로 마르는 명태와 달리 잉어는 수분이 많아 말려 보관하기 어려운 데다 “살아 있어야 복을 준다”는 개념이 강해 연못에 풀어 두고 복을 기원했다고.
혹시 생물 상태의 명태를 걸고 싶다면? 쇠고랑을 찰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바다에서는 명태 포획이 불법이다. 온난화 등으로 씨가 마르며 어종 보호 대상이 됐기 때문. 식당에서 파는 명태는 십중팔구 러시아산이다.
◇운테리어로 복을 기원
전문가들은 최근 명태가 다시 흥하는 이유를 두고 “대형 재난이 겹치는 등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에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붉은색 글귀를 적는 특징 때문에 “으스스하다”고 여겨졌던 부적이 귀여운 캐릭터 모양으로 재탄생해 유행하는 이유와 유사하다는 것. 연초인 만큼 한 해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라는 소망도 있다.
명태의 인기와 함께 집 안 풍수(風水) 등에 신경 쓰는 젊은 층도 늘고 있다. “금이 가거나 깨진 그릇이 있으면 나쁜 기운을 불러온다”며 꼼꼼하게 살피거나 구석에 박아 둔 멈춘 시계 등을 내다 버리는 식이다. “집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며 현관 입구에 화병을 두고 생화 한두 송이를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운테리어(운+인테리어)’라 부른다고.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는 “명태를 거는 등의 행위는 사실 풍수와는 무관한 주술 영역”이라며 “세상살이가 오죽 불안하면 명태까지 걸며 복을 기원하겠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