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초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안락사를 고려한 지 오래였다. 안락사 합법화는 세계적 추세였다. 다만 이 나라는 유교적 전통 탓에 도입이 난망했다. 그 대신 제시된 방안이 바로 ‘효도 쿠폰’ 제도. 국가의 노인 부양 비용을 자녀들에게 떠넘기는 노림수였다. 생각보다 꽤나 안정적으로, 5년이 채 안 돼 효도 쿠폰은 뿌리내렸다.
자식이 성인이 된 그날부터 부모에게는 매년 효도 쿠폰 100장을 지급한다. 이름 그대로, 부모가 효도를 원할 때 쓴다. 쿠폰 사용 시 자식은 반드시 효도해야 했는데, 국가가 정한 효도 기준을 통과한 행위만 인정됐다. 거짓은 용납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효도 쿠폰 사용 시 스마트폰 앱을 켜야 했고, GPS 추적과 감시 AI가 ‘가짜 효도’를 판별했다. 혹시 불법으로 앱을 조작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냥 효도를 해버리는 게 마음 편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부모가 요구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그럴 수 없었다. 매년 배급되는 쿠폰 100장을 소진하지 않으면 자식에게 페널티가 부여됐다. 세금 30% 가산, 신용 등급 강등 및 대출 제한, 공공기관 취업 제한 등등. 그럼에도 효도 쿠폰 제도가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양도’ 기능 덕분이었다. 효도 쿠폰 100장을 소진할 자신이 없는 자녀들은 타인에게 쿠폰을 양도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돈을 주면서.
“나 같은 사람은 시간이 금인데 어느 세월에 쿠폰을 100장이나…. 그냥 돈으로 해결하는 게 낫지.” 자연스레 효도 쿠폰 거래 시장이 활성화됐다. 쿠폰을 넘기려는 이가 받으려는 이보다 많았기에 가격도 장당 5만원 선에서 점차 우상향했다. 이 말은 효도가 ‘직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돈이 궁한 이들은 효도 쿠폰 양도받기를 직업으로 삼았다. ‘전문 효도꾼’으로 불리는 그들은 말 그대로 효도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엄마, 쿠폰 써야 하니까 일단 안마 좀 받으세요.” “병원 갈 일 있지? 내가 모시고 갈게.” “욕실 청소 내가 싹 해둘게. 뭐 더 필요한 거 있나 생각해 봐.” “고스톱이 치매 예방에 좋은 거 알지? 아 잠깐만, 이거 몇 분이나 쳐야 효도로 인정되는지 체크 좀 해보자.” 효도의 양극화가 펼쳐졌다. 돈 있는 사람들은 쿠폰을 양도해 효도에서 해방되고, 돈 없는 사람들은 업무처럼 효도한다? 극빈 노인층 선별 부양에 분명 효과가 있었다. 부작용도 생겨났다.
“잠깐만 기다려 보라니까. 쿠폰도 안 들어오는데 굳이 효도하는 건 시간 낭비잖아. 쿠폰 양도받으면 그때 할게.” “그 정도는 엄마가 알아서 해. 효도 쿠폰 기준 미달이잖아 그거.” 공짜 효도는 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효도가 물질적인 시대가 된 것이다. 가난한 부모는 미안해서 쿠폰 없이 효도를 요구하지 않았다. 쿠폰 100장을 다 썼다는 뜻은, 그해는 효도가 없다는 말과 같았다. 의외로 불만은 적었다. “요즘 요양원 다 망하고 있다는 소식 못 들었어? 옛날에는 부모 요양원에 처박아 두고 1년에 한 번이나 왔었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지.”
억지 효도라도 패륜보다는 낫다, 그것이 민심이었다. 쿠폰 값은 연말이 될수록 비싸졌다. 예상보다 쿠폰 소진이 부진했던 자들이 부랴부랴 양도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때는 효도꾼들이 수퍼 갑이었다. “아니 저도 처리할 효도가 밀려있다니까요? 그 돈 받고 받느니 그냥 안 받고 말지.” 12월 31일에는 ‘효도 폭탄’도 등장했다. 일정한 쿠폰을 소화하지 못하면 징역형에 처했는데, 이 페널티를 대신 떠안고 징역을 살아주는 것이다. 연말만 되면 사람들은 효도 쿠폰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연말은 가족과 함께’라는 전통은 서둘러 쿠폰을 다 털자는 구호가 됐다.
효도 쿠폰은 벌칙이다. 효도 쿠폰에서 벗어나는 게 모든 자식의 소원이었다. 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부모가 사망하면 당연히 효도 쿠폰도 배급되지 않았으니까.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흥미로운 건 이 나라의 안락사 정책이었다. ‘효도 쿠폰 1만회’ 수혜자는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을 뒀기 때문이다. 이론상 자식들에게 100년이나 효도를 받았다는 얘기 아닌가. 그쯤 되면 안락사를 허용해도 된다는 게 국가의 허락이었다. 여유 있는 집안은 이 조건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자식들이 죄다 쿠폰을 양도해 버리는데 어떻게 1만회를 채우겠는가? 반대로 효도꾼들은 이 조건을 쉽게 채웠다. 다만 효도꾼의 부모들은 안락사를 선택하기 힘들었다. “꿈도 꾸지 마! 엄마가 있어야 내가 먹고산다고! 오래오래 살면서 내 효도 받아줘야 해!”
국가는 자랑스레 선전했다. 우리는 초고령화 문제를 가족의 사랑으로 극복했다고, 혼자 남겨진 노인은 없다고.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