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열리는 이화여대 입학식에 참석하는 신입생들은 ‘이대 엑소’ ‘이대 BTS’를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입학식의 아이돌’로 불리는 이들은 2013년부터 매년 입학식에서 축하 공연을 펼치는 이대 남성 교수 중창단. 40~60대 교수들로 이뤄진 이대 남성 교수 중창단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엑소의 ‘으르렁’ 등 그 시대 히트곡을 개사(改詞)해 노래를 부르며 춤까지 춘다. 지코의 ‘새삥’, 아이브의 ‘러브 다이브’, 뉴진스의 ‘하입보이’ 등을 엮어 2023년 입학식에서 선보인 메들리는 유튜브에서 57만회나 조회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딱딱하고 형식적이던 대학 입학식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권위적이라 여겨지던 교수들이 직접 선글라스 끼고 무대로 올라 장기자랑을 펼치고,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대학 총장들은 학생 유치를 위해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날아가 ‘영업’을 뛰기도 한다. 아기 울음소리 줄어든 시대, 학령 인구 감소가 대학교 입학식 풍경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학생 수를 채우지 못한 대학이 폐교 위기에 놓이고, 재수·반수·편입이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대학을 이탈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상황.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대학들은 눈물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교수·총장도 장기 자랑
이대 남성 교수 중창단은 작년엔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걸 넘어 객석에도 뛰어들었다. 학생과 함께 춤추는 모습에 아이돌 콘서트를 능가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교수님들이 신입생 환영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하는 이런 학교가 명문대 아니면 뭐겠느냐” “딸이 이대에 합격해 ‘이대 엑소’를 직관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교수님에게 사랑받으며 학교 다닐 이대생들이 부럽다”는 댓글이 달린다. 올해 입학식에서 부를 노래는 영업 비밀. 올해 새로 합류한 멤버를 포함해 총 15명의 교수들이 막바지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삼육보건대는 입학 첫날부터 총장이 학생들을 만난다. 작년에는 신입생 한 명 한 명에게 장미꽃을 나눠줬다. 올해는 귀여운 마스코트 키링을 축하 선물로 증정할 예정. 대학 생활이 처음인 학생들의 적응을 위해 궁금한 점을 적어 종이비행기로 날리게 한 뒤 총장이 직접 대답하는 시간을 가진 적도 있었다. 올해는 총장이 직접 입학 축하 무대에 오른다. 교수들과 선글라스 끼고 등장해 다 같이 ‘오 해피 데이’를 부를 예정이라고.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춤을 얼마나 잘 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노력한다’ ‘총장도, 교수도 편하게 대해 달라’는 의도를 담은 구애(求愛) 세레나데이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도 질 수 없다. 백석문화대도 입학식에서 교수들이 꾸민 축하 공연을 선보였다. 작년에 남녀 교수가 한 팀씩 입학식의 흥을 담당한 것. 남자 교수 3명은 기타를 치며 유리상자의 ‘아름다운 세상’을 불렀고, 여자 교수팀은 학생들과 무대에 올라 최예나의 ‘스마일리’와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에 맞춰 춤을 췄다. 수강 신청할 때도 “그때 노래 부른 교수님 수업이냐?” “춤춘 교수님은 어느 과냐?” 물어본다고.
강당에 모여 학교 설명을 듣던 입학식은 이제 흘러간 옛 풍경. 학교의 특성이나 콘셉트를 알리는 방법이 지루하거나 평범하면 이목을 끌 수 없다. 한국영상대는 입학식 대신 ‘프로 입단식’을 거행한다. 사실상 입학식을 대체하는 행사지만 신입생과 교직원 1000명이 리조트에서 2박 3일로 진행할 예정. 학생들을 대우해주겠다는 마음을 담아 입학식 주제를 ‘오늘부터 나는 프로다’로 정하고, 학생들의 호칭은 ‘ㅇㅇㅇ 프로’로 통일한다. MBTI 같은 인성 검사 좋아하는 학생들을 위해 나의 공부 스타일이 어떤지 알아보는 학습전략검사(MLST) 같은 프로그램도 포함됐다.
눈길을 끄는 이벤트 역시 필수다. ‘AI 선도 대학’을 슬로건으로 정한 경인여대는 입학 증서를 드론으로 전달한다. 반짝이는 동그란 구 형태의 드론이 학생들의 입학을 알리는 증서를 배송할 예정. 경인여대 관계자는 “학교 슬로건을 아무리 외쳐 봤자 학생들의 주목도가 낮을 거라 생각했다”며 “딱딱한 주제를 재미있고 독특하게 전달하기 위해 올해 처음 시도하는 이벤트”라고 말했다.
안산대는 입학식 당일 학교 앞 마당을 푸드 트럭으로 꾸민다. 첫날부터 학생들이 자유롭게 간식과 음료를 나누며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 작년에는 입학식 기념 아이템을 손수 제작할 수 있는 포토부스 ‘안산네컷’을 설치해 인기를 끌었다. ‘안산대학교 입학을 축하해’라는 문구가 적힌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유행하는 아이템도 매년 바뀌고 있다.
◇이탈 학생을 막아라
입학식의 변화는 학생 이탈을 막기 위한 몸부림이다. 취업 경쟁이 심해지면서 재수·반수를 하거나 편입을 해서라도 대학 졸업장 스펙을 높이려는 학생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치러지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재수생(N수생 포함)은 2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2001학년도 이후 최대를 기록할 전망. 재학생이 다른 학교로 옮겨가는 편입생 수도 늘고 있다. 아이비김영 김영편입의 진로진학연구소가 2024년 9월 대학알리미 공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3 인서울권 신입생 중도 탈락자’는 1만144명으로 전년보다 14%가량 늘었다. 인서울권 대학에 진학한 10명 중 1명은 편입 등을 위해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서울 4년제 대학에서 학생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교직원은 “선호도가 높지 않은 대학일수록 입학식부터 수업 커리큘럼, 취업 지원까지 학생들의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사실”이라며 “요즘에는 졸업식에서도 교수들이 장기자랑을 하고, 선물을 주면서 학교 평판에 신경 쓴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에 가지 말고 지금 학교에 머물러 달라고 읍소하는 셈이다.
◇학생 유치하러 해외로
대학 총장들은 직접 영업사원이 돼 세계로 출장을 다닌다. 바다 건너 해외까지 찾아가 학생을 유치해 오는 것이다. 국내 학생들만으로는 대학 재정을 유지하기 어려운 대학들의 고육지책이다.
삼육대 제해종 총장은 지난 1년간 미국과 아랍에미리트(UAE), 호주, 태국, 캄보디아 등으로 여섯 차례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작년 9월부터 중동 국가에 있는 83개 대학에 “한국 대학과 교류하자”며 총장 명의의 편지도 보냈다. 그리고 이달, UAE 5개 대학과 국제 교류 MOU를 체결했다. 올해 여름 서머캠프부터 중동 학생들을 받기로 했다. 총장이 해외로 직접 영업에 나서 중동권 대학과 교류 협약을 맺은 건 보기 드문 일이다. 삼육대 관계자는 “서머캠프 이후 교환학생·복수학위 과정 등으로 교류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아주자동차대도 총장이 직접 유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1년에 한 달 이상 해외에 머물며 학교 홍보를 다닌다. 2021년 베트남·우즈베키스탄 2국에 불과했던 아주자동차대 재학 유학생 국적은 몽골·미얀마 등이 추가되면서 작년 기준 7국으로 확대됐다.
대학 내 집무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던 총장들이 직접 발로 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출생이 대학의 존폐를 위협할 만큼 큰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현재 약 16만명인 유학생을 2027년까지 30만명 수준으로 유치해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지방대나 전문대의 경우 국내 고교 졸업생만으로 정원을 채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폐교한 17개 대학교(일반대·전문대) 모두 비수도권 소재 대학이었다. 신입생 미충원 인원의 67%도 비수도권 대학에 집중됐다. 2040년에는 지방대 절반 이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과거에 대학은 ‘소 팔아서 보낸다’며 우골탑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 졸업장이 너무 흔해서 취업의 보증수표가 되지 못하는 시대. “1년을 보태서라도, 부모님 등골이 조금 더 휘더라도 좋은 대학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학생들의 불안감이 교수를 무대 위에 세우고, 총장을 영업 사원으로 만드는 셈이다. 권위주의 타파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안쓰럽다는 시선이 공존하는 2025년 입학식 풍경. 아무튼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