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은퇴를 선언한 기노시타 유카가 "평범한 식사는 가능하지만 이전처럼은 못 먹을 것 같다"며 신라면 툼바 4봉지를 끓여 먹고 있다. /유튜브

일본의 유명한 먹방 유튜버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구독자 524만명을 보유한 기노시타 유카(木下ゆうか)는 지난 1일 “대식가로서 계속 활동하기 어렵다”며 먹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기노시타는 2009년 일본 리얼리티 쇼 ‘대식가들의 전쟁’에서 작은 체구(키 158cm·몸무게 47kg)에도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 치우며 유명해졌다. 2014년부터는 유튜브에서 본격적인 먹방을 선보였다. 한 번에 닭튀김 600조각, 햄버거 100개, 스테이크 5kg, 라멘 5kg을 먹는 등 믿기 힘든 대식 기록을 남겼다. 특히 달걀 50개를 넣은 비빔밥을 된장국 6kg과 함께 먹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올해 40세인 기노시타는 “(먹방 유튜브로 활동한) 세월이 흐르면서 건강이 악화됐고, 평범한 식사는 가능하지만 이전처럼 먹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할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난해 약 7개월 공백기를 가진 뒤 복귀했다. 이 기간 조울증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노시타가 먹방을 그만두기로 한 것은 스스로를 살린 현명한 선택일지 모른다. 먹방 유튜버는 예상외로 극한 직업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량의 음식을 단시간에 먹고 소화시키려면 위·장 등 소화기관이 혹사당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신체는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구독자 178만명을 보유한 국내 먹방 유튜버 ‘입짧은햇님’은 지난해 목 부상을 당했다. 그는 “크리스피 삼겹살을 과하게 익혀서 많이 바삭하게 먹었는데 그것이 문제였다”며 “목소리가 안 나오다가 침 삼키는 것조차 고통스러웠고 몸살 난 것처럼 아파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먹방 유튜버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중국 유튜버 판샤오팅은 10kg이 넘는 음식을 먹다가 생방송 도중 목숨을 잃었다. 사인은 ‘과식’.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 체중은 무려 300kg이었다. 앞서 6월엔 ‘카예하스 503(Callejas 503)’으로 알려진 엘살바도르 출신 유튜버 에드가르 란다베르데가 37세 나이로 사망했다. 같은 달 필리핀 유명 콘텐츠 크리에이터 마노이 아파탄(Apatan·38)도 먹방 다음 날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 충격으로 필리핀에서는 먹방 콘텐츠 금지 검토에 나섰다.

◇씹뱉·먹뱉 논란에 시청자 실망

우연의 일치일까. 먹방 유튜버들의 은퇴·사망 소식이 이어지는 요즘, 먹방의 인기도 하락세인 듯하다. 구글 트렌드로 먹방이 얼마나 검색되는지 확인했다. 구글 트렌드는 2004년 이후 특정 검색어가 얼마나 검색되는지를 세계·국가·지역별로 알아볼 수 있다. 전 세계 검색량이 궁금할 때는 영어(mukbang)로, 대한민국으로 한정했을 때는 한글(먹방)로 입력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먹방은 2014년 말~2015년 초부터 검색이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코로나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된 2019년,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비상사태를 선언한 2020년 검색량이 극점을 찍었다. 이후 먹방 검색량은 차츰 줄어드는 하향 곡선을 나타내고 있다〈표 참조〉.

그래픽=송윤혜

먹방 예능 프로그램도 폐지되거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먹방 예능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맛있는 녀석들’은 시청률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5년 1월 첫 방송과 함께 국내 방송계에 먹방 열풍을 일으켰고, 한때 한 달에 재방송이 1000회에 달할 정도였다. 2021년 하반기 론칭한 ‘토요일은 밥이 좋아’는 먹방 유튜버 히밥을 주축으로 박명수, 노사연 등 멤버들이 전국 맛집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먹방을 선보여 반짝 인기를 얻었지만 지난해 7월 종영했다.

‘먹뱉’ ‘씹뱉’ 논란은 먹방이 최근 시들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먹뱉이란 ‘먹다 뱉는다’ 씹뱉은 ‘씹고 뱉는다’는 뜻. 먹방 유튜버들이 실제로는 음식을 다 먹지 않고 몰래 뱉거나 버린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먹방은 이두·삼두박근 대신 ‘소화 근육을 사용한 차력 쇼’에 가깝다. 시청자들은 보통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는 양의 음식을, 그것도 작고 마른 여성이 깨끗하게 먹어 치우는 모습을 목격하며 감탄한다. 먹방은 대리 만족도 주지만 이처럼 ‘진짜 저걸 다 먹나 보자’는 심리가 인기에 큰 몫을 해왔다.

그런데 먹방 크리에이터들이 음식을 먹지 않고 몰래 뱉거나 버린다는 의혹이 이어지면서 실망감이 커졌다. 일부 네티즌은 “알고 보니 기만이었다”며 비판했고, 음식 낭비 문제까지 더해지며 부정적 여론이 확산했다. 게다가 초창기 먹방은 신선한 콘텐츠였지만,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비슷한 포맷을 반복하다 보니 식상해졌다.

또 틱톡, 유튜브 쇼츠 등 짧고 강렬한 숏폼 콘텐츠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긴 호흡의 먹방보다 짧고 임팩트 있는 영상이 선호되고 있다. 유튜브 등 주요 플랫폼이 폭식처럼 자극적인 콘텐츠 노출을 줄이고 건강하고 윤리적인 콘텐츠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알고리즘을 조정하면서 먹방 조회 수가 자연스럽게 감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A씨는 “그렇다고 먹방이 다 사라지진 않겠지만, 단순한 폭식형 먹방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했다.

저속노화 급속사망

◇MZ세대 새 키워드 ‘저속노화 급속사망’

마라탕과 탕후루처럼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던 MZ세대가 건강한 식단으로 선회했다는 점도 먹방 인기 하락의 요인으로 꼽힌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트렌드 키워드는 ‘저속노화’다. ‘천천히 늙고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뜻. 과거 유행한 ‘9988(건강하게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의 MZ식 표현이다.

2030세대가 저속노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2020년대 들어 헬스, 보디 프로필 등이 유행하면서 건강한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20대에서도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 발병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202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20대 당뇨 환자 증가율은 47.7%로 전 연령대 중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부모 세대가 50~60대에야 경험한 성인병을 훨씬 빨리 겪고, 일찍 노화된 상태로 더 긴 노년을 살아야 하는 셈이다.

노화를 늦추고 건강한 노년기를 보내기 위해 ‘저속노화 식단’도 젊은 층에서 유행이다. 단당류, 정제 곡물 등 노화를 촉진하는 음식 대신 흰 살 생선 등 양질의 단백질과 채소, 잡곡밥 등 영양소가 고루 든 음식 챙겨 먹기가 핵심. ‘저속노화밥’이 대표적이다. 유튜브와 X(옛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저속노화를 알리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유행시킨 밥으로, 렌틸콩·귀리·현미·백미 4:2:2:2로 혼합해 짓는다. 흰쌀밥처럼 혈당이 급속하게 치솟는 이른바 ‘글루텐 스파이크’를 막아 만성질환 발병 가능성을 낮춰준다.

저속노화 생활을 실천하는 콘텐츠도 증가 추세다. 저당 식품과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 레시피 등을 공유하는 SNS 계정이 늘어나고, 이를 통해 ‘클린 식단’ 인증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정희원 교수는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유튜버들이 저속노화 식단을 다루면서 젊은 층이 저속노화 식단을 뭔가 새롭고 멋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급속사망’은 요즘 저속노화와 짝을 이뤄 떠오르고 있는 키워드다. ‘오래 아프지 않고 빨리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9988과도 통한다. 저속노화와 급속사망은 동전의 양면 같은 개념. 정 교수는 “저속노화를 실천하면 급속사망이 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