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보호자를 만나 하교하고 있다. 돌봄교실에서 나서다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대전의 1학년 김하늘 양 피살 사건 이후 정치권은 '하늘이법'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뉴스1

새 학기를 앞둔 요즘 초등학교는 뒤숭숭하다. 방학 중 운영되는 돌봄 교실이나 방과 후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자녀를 직접 데려가려고 교문 앞을 서성이는 학부모가 평소보다 몇 곱절 늘었다. 직장에 휴가 내고 등교를 안 시키는 이도 있다.

‘하늘이 사건’ 여파다. 지난 10일 오후 4시 40분, 대전의 초등학교 1학년 김하늘(8)양은 돌봄 교실이 파하고 학원 차를 타러 나갔다. 전국의 수백만 초등생이 매일 하는 일이다.

그런데 “돌봄 교실서 가장 늦게 나오는 아이를 노렸다”는 교사에게 붙잡혀 무참히 살해당했다. 이런 일이 터지면 부모들은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가 된다. 누구를 탓할 겨를도, 처지를 불평할 여력도 없다.

정부와 각 교육청은 돌봄 교실 전수조사에 돌입했고, ‘돌봄 교실 CCTV 설치’ ‘하교 시 대면 인계 의무화’ ‘교사 정신 건강 점검 강화와 즉시 해고’ 같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초저출산 시대지만 맞벌이 부모가 외벌이를 넘어서면서 어린이 돌봄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잘해봤자 중간이요, 삐끗하면 재앙인 돌봄의 책임 소재는 끝없는 핑퐁의 대상이다. 그 돌봄의 사바세계(괴로움 많은 인간 세상)를 겪어봤다.

대전 초등학생 하늘이 피살 사건이 발생한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가 현장 확보된 가운데, 하늘이가 오후 4시40분까지 있었던 2층 돌봄교실의 불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박 터지는 경쟁을 뚫었더니

기자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서울의 공립초에 보낸다. 그리고 2024년 2월부터 1년간 교내 돌봄 교실 신세를 졌다. 운이 좋았다. 원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3년 여름 뉴욕 특파원을 마칠 무렵 초등생 자녀를 둔 중앙 부처 주재관이 귀띔했다. “귀국하면 돌봄 교실 신청해 봐요. 안전한 학교에서 오후 내내 돌봐주니 저학년까지는 버틸 수 있대요. 들어가는 게 하늘의 별 따기지만.”

정말 그랬다. 전교생 1000여 명 중 돌봄 교실 혜택을 받는 학생은 1·2학년 40여 명뿐. 교무실을 찾아갔다. 돌봄 교실이 단 두 개란다.

“학령인구가 줄었는데 교실이 부족한가요?” 묻자 교감은 “돌봄 전용 교실은 바닥 난방을 깔고 싱크대·냉장고를 갖춰야 해요. 빈 교실 아무 데나 애들 받는 게 아닙니다” 설명했다. “자리 나기 힘들 텐데, 내년 초 신청이나 해보세요.”

하늘이 사건과 무관한 모 초등학교에서 이달 초 겨울방학 선택형 돌봄 프로그램이 열리는 모습. 안전한 학교에서 종일 아이를 봐주는 '어린이 공공 돌봄'은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다. /뉴스1

초등 돌봄 교실은 2004년 시작돼 현재 전국 29만여 명을 수용한다. 하지만 급증한 돌봄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한다. 저소득층과 한부모·조손·다문화 가정 자녀를 우선 선발하고 나면 일반 맞벌이나 그 외 가정 순위는 쭉 밀린다.

매년 초 학교마다 잔여 정원을 두고 경쟁률 수십 대 1에 이르는 추첨을 한다. 상자 속 탁구공을 뽑기도 한다. 돌봄 교실 우선순위에 들기 위해 위장 전입하거나, 재직 증명서를 위조하거나, 위장 이혼하는 경우까지 있다.

돌봄 교실 떨어진 집의 플랜 B는 대개 ‘학원 뺑뺑이’다. 저학년 정규 수업이 끝나는 오후 1~2시부터 부모 퇴근 시간까지, 외부 업체가 위탁 운영하는 방과 후 수업이나 각종 학원을 몇 개씩 끼워 넣어 사교육 시장에 돌봄을 맡기는 것이다. 시간대를 공백 없이 촘촘히 채워야 해 ‘테트리스 게임’에 빗대기도 한다.

모 학교에서 '탁구공 뽑기' 공개 추첨이 열리는 모습. 저소득층과 한부모, 조손 가정 자녀가 우선 선발되고 일반 맞벌이 등은 추첨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독자 제공

별수 없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한자·큐브·공예 같은 방과 후 수업으로 학교에 체류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3~4시부터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으로 연결하면 얼추 6~7시까지 버틸 수 있었다.

아이는 처음 맛본 K학원의 신세계에 흥분했다. 하지만 흔들리는 학원 차에서 다른 아이 스마트폰 게임을 들여다보다 멀미를 했고, 피곤한지 구내염이 계속 올라왔다. 못 할 짓이었다. 2학년 개학을 앞두고 마침내 “돌봄 교실에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징검다리

돌봄 교실은 주 3~4회 외부 강사가 와서 한국사·음악 등의 수업을 40분씩 했다. 바닥은 따뜻하고 책장엔 책이 가득했다. 과일과 떡 등 간식도 훌륭했다. 아이들끼리 보드게임도 하고 딱지도 접었다. 나이 지긋한 선생님은 인자해 보였다.

피아노 학원은 끊고, 4시 40분까지 돌봄에 있다가 태권도만 가기로 했다. 공교육 신봉자로서 가슴 벅차고 세금 낼 맛이 났다.

그런데 아이가 “친구들이 일찍 나가버려 재미없고 답답하다”고 했다. 일하다 세 시 반쯤 학교에 가봤다. 스무 명 중 서너 명만 남아 있었다.

화창한 봄날, 아이들은 형광등 아래 EBS ‘엄마 까투리’를 시청 중이었다. 두세 살 아기들이 보는 만화다. 까투리는 꺼병이 네 마리를 혼자 키우면서도 늘 온화한 미소와 평정심을 잃지 않는, 어쩐지 인간 어미를 부끄럽게 만드는 새다.

지난달 경기도의 모 초등학교의 늦은 오후 돌봄 교실 풍경. 이론적으론 '저녁 7시'까지 운영돼있지만, 많은 학교에서 서너시부터는 이렇게 남아있는 아이들이 적다. 아이를 돌봄교실에 오래 두지 않으려는 부모가 많아서다. /뉴시스

미국 공립학교는 전 학년이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규 수업을 받았다. 유대계 돌봄 업체가 운영하는 방과 후 클럽에선 1시간쯤 학교 숙제 하고 간식 먹고 나면 해가 지도록 운동장에서 놀았다. 아이는 매일 새카맣게 타도록 농구·축구를 했고, 미끄럼틀 위를 뛰다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일하는 부모들도 5시쯤이면 퇴근해 땀내 나는 자녀와 상봉했다.

그 풍경을 회상하며 공손하게 물었다. “아이들이 정적인 활동만 하는 것 같은데, 교내 놀이터에서 놀 시간은 없을까요?” 선생님들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밖에 나갔다 다치면 누가 책임지나요?” “그런 얘기는 처음 듣네요. 위에서도 그런 지침은 없어요.”

의문은 곧 풀렸다. 한국 돌봄 선생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교문 밖에서 걸려 오는 각종 사설 학원 차량 기사나 도우미 전화를 받아 아이들을 시간 맞춰 가방 싸서 내보내는 것이었다.

2시 30분 A와 B를 영어 학원 차에 태우고, 2시 45분 C는 발레 차, 3시엔 D·E·F를 수학 차, 3시 20분엔 G를 수영장 차에…. 그것만으로도 혼이 빠질 지경인데, 놀이터에 가면 전화는 어떻게 받는단 말인가. 아니 놀이터에서 놀 아이가 있기는 한가.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앞에 늘어선 학원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전국 대부분 초등학교앞에서 오후 내내 벌어지는 흔한 풍경이다. 공교육에 기대하지 않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하교 후 학원 갈 시간까지만 맞춰 돌봄교실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조선일보DB

진보 교육감들이 집권한 십 수년간 초등학교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시험도 격차도 없는, 어떤 이상화된 공간이 됐다. 수준별 학습이나 특기 계발은 학원 몫이다. 이걸 학교는 모르는 척하고, 부모들은 재력과 정보력을 동원해 사교육을 찾아다닌다.

그 사이의 돌봄 교실은 학원을 가기 위해 거쳐 가는 정거장, 공교육과 사교육을 잇는 중간계 같은 것이었다.

돌봄도, 돌봄 절벽도 두렵다

이 바닥의 룰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현타’가 왔다. 초등 교사인 지인은 딱하다는 듯 “교사들도 돌봄 교실 안 좋게 보는 거 몰랐느냐”고 했다. 학부모 표심을 노린 정치권의 압박에 교육 현장이 보육화되는 데 대한 불만, 학생들 교내 체류가 길어질수록 행정 업무가 가중되는 부담은 이해됐다.

그런데 이 내부자들에게서 “돌봄 교실 특성상 각 반의 폭탄이 다 모이더라” “사고 안 나게 ‘쳐다보기만’ 하는 곳이라 내 아이는 절대 안 보낼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자식을 남에게 맡기는 자의 기본자세는 ‘굽신굽신’이다. 잠시 한눈팔거나 밉보였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당할 수 있는 게 아이 돌봄이다. 정부는 저출산을 타개한다며 원하는 아동은 밤 8시까지도 봐준다는 ‘늘봄학교’까지 내놨다. 그러나 부모들이 원하는 게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끝없는 돌봄의 외주화는 아니다. 폭탄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오전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김하늘양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뉴스1

어느 가을, 돌봄 교실에 아이가 제대로 가 있는지 확인하려 전화했다. 선생님은 “배드민턴 방과 후 수업 하는 체육관으로 내보냈는데… 어? 아니네, 배드민턴은 50분 뒤네요?” 했다. 수많은 아이를 챙기느라 정신없는 목소리였다. 위치 추적기를 붙인 아이 책가방은 돌봄 교실에 남아 있었다.

택시 잡아 학교로 달려가는데 배드민턴 강사가 연락해 왔다. 아이는 체육관에 혼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돌봄 선생님과 서로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하늘이가 1시간여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들었을 때, 온몸의 피가 확 쏠리는 듯하던 그날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아이는 3학년이 되는 3월부턴 그 돌봄 교실조차 못 간다. 남의 희생을 전제로 한 돌봄을 누리는 것도, 돌봄 절벽에 부닥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많은 부모들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