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 믹스견 암컷, 사람 잘 따르며 이목구비가 예쁨.’ ‘광주 북구 암컷 고양이, 탈수로 기력 없음.’ ‘경북 문경 2개월령 새끼 4마리, 너무너무 귀여움.’ ‘서울 국사봉 산책로 입구서 발견한 포메라니안 수컷, 온순하며 등 쪽 피부병 외엔 상태 양호.’ ‘2월 25일 충남 아산 보호소에서 출생한 믹스견 암컷, 실물 깡패.’
최근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방방곡곡서 올라온 입양 대상 동물의 스펙이다. ‘사람 좋아하며 활발함’ ‘예쁘고 온순함’ 같은, 흔히 사람들이 키울 결심을 하게 만드는 바로 그 특징들을 가득 안은 채 버려진 동물들.
지난 2월 5일부터 3월 5일까지 한 달간 전국 공공 보호소에 등록된 개와 고양이 등은 2269마리. 하루 약 75 마리씩 버려진 꼴이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유기 동물도 급증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는 걸까. 혹시 처음부터 비뚤어진 사랑은 아니었을까. 유기견 실태를 알리기 위해 제정된 ‘국제 강아지의 날(3월 23일)’을 앞두고 반려동물 대국의 그늘을 짚어봤다.
처음부터 버릴 생각은 아니었다
경기도 분당에서 초등생 자매를 키우는 주부 오모(39)씨는 요즘 ‘둘째’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지난해 첫째 생일에 비숑 강아지를 사주자, 둘째도 “나도 내 강아지 갖고 싶다. 책임지고 키우겠다”고 졸라 한 달 만에 모티즈 암컷 새끼를 또 들였다. 강아지끼리 언니·동생 해가며, 아이들 정서도 안정되고 즐거웠다.
그러나 낮에 개 두 마리만 남는 아파트에서 비숑의 텃세에 몰티즈는 주눅이 들었다. 제대로 못 먹고 툭하면 다쳤고, 사람만 보면 안아달라고 낑낑댔다. 어린 둘째가 강아지를 알아서 운동시키거나 털과 똥을 잘 치울 리 없었다. 함께 혼나는 일이 많아졌다.
몰티즈가 성견이 되자 둘째 딸은 “얼굴이 못생겨졌다”며 멀리했다. 슬개골 탈구와 안질환 치료비에 미용비, 자궁과 난소를 들어내는 중성화 수술 등 각종 비용이 불어나자 몰티즈는 ‘처치 곤란 장난감’처럼 됐다.
결국 오씨는 “더 좋은 주인을 찾아주자”며 내보낼 방법을 알아보는 중이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를 내건 사설 보호소, 즉 신종 펫숍을 통해 파양하려 했더니 평생 돌봄비 수백만원을 요구했다. 시골 으슥한 곳에 개를 버리고 달아나는 건 몹쓸 짓이라고, 아직은 생각한다.
돈도 안 들고 나쁜 사람도 되지 않을 방법은 없다. 그러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귀여운 강아지 갖고 싶다”는 아이와 부모의 대화를 엿들은 그는 절박하게 말을 걸었다. “저희 애 데려가실래요?”
1인 가구와 비혼·딩크족 증가와 함께 펫팸족이 급증하며 펫 시장 규모가 5조원대에 달한다.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더 많이 팔리고 약국의 어린이 영양제 매대는 동물 영양제가 밀어냈다. 개마카세 식당과 개 장례식, 개 명품 패딩 등 호화판 용품과 서비스가 쏟아진다.
한쪽에선 추악한 유기 전쟁이 벌어진다. 정부 공식 집계상 지난해 약 12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버려졌다. 사설 보호소에 들어온 동물까지 하면 실제 유기 규모는 그 두세 배인 20만~30만 마리로 추정된다. 독거 노인이나 독신자가 사망하면서 반려동물이 홀로 남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개를 버리는 온갖 이유들
‘동물 싫어하는 사람은 동물을 (소유하지 않으므로) 버리지 않는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버린다’는 말이 있다. 그저 예쁘고 따스함이 그리워서, 또는 동정심과 정의감으로 가족으로 들이지만 끝까지 책임지긴 쉽지 않다.
한 여론조사에선 반려 인구의 절반이 “파양을 고려한 적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반려동물 중 한 주인 밑에서 평생을 살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비율은 20%도 안 된다.
유기 동물의 70%는 인간의 가장 오랜 친구, 개다. 유기되는 나이는 오모씨의 몰티즈처럼 한 살 전후가 가장 많다고 한다. 성견이 되며 ‘안 귀여워지는’ 때다. 그다음이 10살 넘은 노견이다.
개를 버리는 사람들은 ‘문제 행동’을 가장 많이 거론한다고 한다. 똥을 못 가리거나 자기 똥을 먹을 때, 털갈이할 때, 사람이나 물건을 물어뜯을 때, 낮에 텅 빈 집에서 자다가 밤에 울부짖을 때, 번식기가 올 때, 건강보험도 없는데 자꾸 아플 때, 특정 견종 유행이 지나갈 때, 개 탓을 한다.
개라면 당연한 본능인데 사람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대개 좁은 아파트 실내에서 동물과 사람이 24시간 같이 지내며 불거진다. 영원히 작고 귀여운 아기 강아지로 남게 하는 시술 비용이나 보살핌의 시간을 인내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료 값과 의료비 인플레도 유기 동물이 늘어나는 배경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변화, 고환율 여파로 수입 사료와 부식 값이 최근 크게 뛰었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서 반려동물 양육비는 월평균 14만2000원, 개는 17만5000원으로 전년보다 1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료비는 동물 애호가인 전직 대통령의 개도 버리게 한 문제다. 2022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풍산개 파양 사건. 2018년 북한에서 선물받은 풍산개 새끼에게 젖병 물리고 화보 달력까지 만들어 정치 현금화한 그는, 새 정부가 월 242만원의 관리 비용을 대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환 통보’하고 개들을 동물원으로 보냈다.
“국가 정상 간 선물은 개인 소유가 아니어서 국가에 귀속된다”라고 항변했지만, “4년이나 키워온 개가 아무한테나 보내도 되는 물건이냐”는 윤리적 논란을 일으켰다.
더 받아주면 유기 줄어들까
동물 유기는 범죄다. 동물보호법에 ‘동물을 계속 기를 수 없다고 해서 그 동물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벌금은 300만원 이하에서 500만원 이하로 최근 올랐다. 그러나 실제 처벌 사례는 극히 드물다. 워낙 몰래 버리기 때문이다.
주인들은 CCTV 없는 야산이나 국도변에 개를 내려놓고 차 액셀을 밟고, 애견 카페 근처를 산책하는 척하다 기둥에 묶어두고 도망간다. 동물 병원이나 호텔에 맡기고 까먹었다는 듯 찾아가지 않는다.
작년엔 몰래 버린 푸들이 구조돼 되돌아오자 생살을 찢어 동물 등록 내장 인식 칩을 파내고 다시 버린 일도 있었다. 여름 휴가철이나 5월, 추석과 설 연휴 등에 사람끼리 놀러가며 동물 유기가 급증하는 패턴도 여전하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유기 동물 보호소는 포화 상태다. 시설과 인력을 늘려도 동물이 끝없이 밀려든다. 원래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입양 대상 공고에 올리고, 일정 기간 입양도 안 되면 안락사를 시킨다. 이 작업에 연 3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지자체마다 유기견·유기묘를 입양하는 가정에 지원금을 주고 중성화 수술도 해준다. 노인·취약 계층에겐 반려동물 진료비를 대주고 개 놀이터도 만든다.
반려동물을 잘 키우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소유의 진입 장벽을 낮춰 유기 동물을 더 늘린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반려동물세(稅)’ 도입을 검토했다. 책임감과 의지가 확고한 이들만 동물을 소유하도록 하는 선진국 선례를 참고한 것이다. 그러나 “가난하면 개도 못 키우느냐” “세금이 생기면 개를 더 버릴 것”이란 반발에 없던 일이 됐다.
많은 사람이 상처받은 유기 동물을 받아들여 돈과 시간, 정성을 쏟아부어 키운다. 기업과 연예인, 정치인들은 앞다퉈 유기견 보호와 기부 캠페인을 벌인다. ‘유기견’ ‘유기묘’가 정치적 올바름(PC)의 치트키처럼 소비된다.
그걸 노린 돈벌이 시장도 커졌다. “유기견을 구조해 가족이 됐는데 갑자기 중병에 걸렸다”는 주작 스토리로 모금하는 ‘개플루언서’들이 넘쳐난다. 캣맘들은 자신들이 구조한 길고양이를 입양해 가는 이들에게 ‘고밥비’를 내라고 요구해 분쟁이 일기도 한다.
가족 같던 동물을 버리는 사람은 늘고 유기 동물 입양 비율은 점점 떨어진다. 말 못 하는 동물에게 함부로 줬다 뺏는 사랑, 이대로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