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사는 것이 지루하다. 오래 산 게 죄다, 빨리 죽어야 할 텐데. 언제 죽을는지 점이라도 보고 싶다.” 만날 때마다 버릇처럼 푸념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어제는 내가 농담 삼아 “점 보시나 마나, 오래 사실 거예요” 한마디 하고는 내가 점 본 이야기를 해준 겁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두 사람의 사주 풀이, 그중 한 사람은 동대문의 남루한 여관방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던 젊은 도사. 내 사주를 살펴보더니 “나무로군요” 했다. 내가 대뜸 “나무라면 속리산의 정1품 소나무인가요?” 물었더니 “뼈만 앙상한 겨울나무라 긴 겨울이 지나 봄이 돼 봐야 꽃이 필지 말지를 알 수 있겠다”는 겁니다.

나는 성급했던 나의 반응이 무안해서 어색한 감정을 수습하고 있었는데, 그 젊은 도사가 말했습니다. “속리산 정1품 소나무라고 생각했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앞으로 이런 데는 오지 마십시오.” 나는 그곳에 갔던 게 몹시 후회스러웠지만,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50대 어느 해에, 북한산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 손금 잘 보는 용한 할머니가 있다고 해서 일행을 따라 평창동의 한 주택으로 갔습니다. 주차장 속 쪽방에서 손금을 보던 할머니. 내 손금을 보더니 “평생 비단실을 뽑고 껍데기만 남을 누에 팔자”라는 거예요. 내 얼굴에 낙담한 빛이 역력했던지, 할머니가 던진 한마디. “평생 건강하겠구먼.”

맞습니다. 두 사람의 풀이대로, 나는 그 뒤로 점을 보지 않고도 큰 사고 없이 90 평생을 잘 버티고 살아온 겁니다. 오랜만에 할 일 없이 신문을 꼼꼼히 살펴보니 아직도 오늘의 운세가 실려 있었는데, 여러 개의 운세 중에 눈에 띄는 한 구절.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필자(가명)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 실버타운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