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김치찌개 집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어머니가 홀로 이사 갈 집에 놓을 가구니 가전이니 하는 것들을 보다 보니 은평구 구산역 부근까지 오게 되었다. 어머니는 새로 장만할 물건들을 보고도 기분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랑 같이 있던 집을 옮기려니까 기분이 그래.” 어머니는 읊조리듯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결국 그 어느 것도 사지 못하고 점심때가 되었다.
근처에서 식당을 찾았다. 식당 이름은 ‘싸리골’이었다. 1990년 문을 열었다는 이 집은 저녁에 돼지갈비와 삼겹살을 주로 팔고 점심시간 한정으로 김치찌개를 메뉴에 올렸다. 넓은 가게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른 사람과 널찍이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았다.
어릴 때 제일 자주 먹은 음식은 김치찌개였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부산 범천동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9시가 넘었다. 어머니는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김치와 어묵, 두부를 툭툭 썰어 우르르 끓인 다음 밥상에 올렸다. 부모님과 먹는 첫 끼니였다. 반찬은 김과 콩자반 정도였다. 그래도 네 식구가 둘러앉아 달그락달그락 밥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보내는 시간이 늘 기다려졌다.
남은 김치찌개는 다음 날 동생과 나의 점심이었다. 찌개 속에 부스러진 두부도, 퉁퉁 불어버린 어묵도, 전기밥솥에서 눌어붙은 쌀밥도 괜찮았다. 하룻밤 지난 김치찌개는 때로 맛이 더 나았다. 사납게 튀던 신맛과 매운맛이 온순해지고 김치는 더욱 부드러워져서 밥을 비벼 먹으면 술술 속으로 흘러 내려갔다. 그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남이 끓여준 김치찌개를 어머니와 함께 먹게 되니 기분이 낯설었다.
앉자마자 반찬이 깔렸다. 부침 두부, 시금치, 오이김치, 달걀 프라이까지 올라왔다. 살벌한 요즘 물가를 알기에 수북이 담은 반찬 그릇이 남다르게 보였다. 이리저리 옹이가 진 양은 냄비에 담긴 김치찌개도 나왔다. 어머니 또래처럼 보이는 주인장이 가스불을 올리며 “좀 끓여서 드세요”라고 말했다. 찌개가 익기를 기다리며 반찬에 젓가락질을 했다. 시금치는 너무 익혀 흐물거리지 않고 살짝 아삭한 느낌이 살아 있었다. 놀란 것은 김이었다. 기름이 오래되어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없었다. 갓 구운 것처럼 바삭하고 향긋하여 김 한 장도 남기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반찬을 두고 김치찌개만 먹기에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묵사발도 추가했다. 손가락 두께로 툭툭 잘린 도토리묵을 냉면 육수처럼 시원하고 새콤한 국물에 얼음까지 담아냈다. 채 친 오이와 묵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매끈하고 깔끔하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묵의 질감이 느껴졌다.
묵을 반쯤 먹었을 때 어머니가 가스불을 줄이며 말했다. “이제 먹자.” 내가 국자를 잡고 김치찌개를 대접에 퍼 담았다. 냄비 밑으로 돼지고기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대접을 내밀자 어머니는 “난 물에 빠진 고기 싫어해”라고 말하며 굳이 돼지고기를 일일이 내 쪽에 덜어냈다. 나는 어머니가 그런 입맛을 가진 줄 그날 처음 알았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그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로 끓였다는 김치찌개는 양념이 많아 텁텁하거나 혹은 기름이 잔뜩 껴서 무겁거나 하지 않았다. 양념이 덜한 서울식 김치를 써서 신맛이 깔끔하게 떨어졌다. 지나치게 길게 남는 감칠맛도 없었다. 어릴 적 흔하게 먹었으나 이제는 찾기 어려워진 단정한 맛이었다. 하얀 두부와 돼지고기를 몇 번 퍼 담아도 냄비에는 여전히 두어 번 먹을 양이 남아 있었다. 손으로 툭툭 잘라 판다는 삼겹살과 목살을 써서 재운 돼지갈비도 그 맛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톰한 조끼를 입고 고양이처럼 조용히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손님을 챙기던 주인장은 또 공손히 카드를 받아 계산하고는 인사를 했다.
익숙한 맛과 풍경이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살뜰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하듯 살았다. 매일 뜨고 지는 작은 별처럼 희미하지만 사라지지 않으며, 하루와 그다음 하루를 버텨온 당신들이었다. 계산을 치르며 이제는 한껏 작아진 어머니의 뒷모습을 봤다. 이미 모두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내어줘 버려 그만큼 당신이 작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날 김치찌개의 돼지고기도, 달걀 프라이도 모두 내 앞에 밀어 놓았다. 나는 여러 번 “식사 좀 제대로 하세요”라고 말했으나 어머니는 문득문득 먼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싸리골(서울 은평구 서오릉로 160): 김치찌개 1만원(점심 한정), 묵사발 7000원, 돼지갈비 300g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