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관 뚜껑을 닫아봐야 그 가치를 안다. 영결식에서 듣게 되는 조사(弔辭)다.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죽고 난 뒤에야 나온다는 뜻이다. 최근 별세한 전설적인 복서 조지 포먼(1949~2025)의 부음 기사들과 대중의 기억을 종합하다 보니 생애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의미심장하며 부피가 큰지 새삼 깨닫게 됐다.
10대 시절은 짐작대로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 문제아는 도둑질을 하고 경찰에 쫒기다 우연히 TV에서 “당신의 삶을 바꿀 기회입니다”라는 문구를 봤다. 어느 직업학교 광고였다. 그 한 문장이 부랑아를 수렁에서 꺼낸다. 직업학교에 가서도 주먹질을 참지 못하던 포먼은 숙명처럼 복싱을 시작했다.
1968년 올림픽 대표로 헤비급에서 세계를 제패했다. 프로가 된 그는 1973년 무패 복서 조 프레이저를 때려눕히고 챔피언에 오르는 등 40연승(37KO)을 쾌속 질주했다. 하지만 이듬해 전성기는 지났어도 노련한 무하마드 알리에게 쏘여 KO패를 당한다. 주심이 카운트를 빨리 세었다느니 변명을 했지만 그때까진 지는 법을 몰랐다.
포먼은 재기를 노렸지만 1977년 라커룸에서 임사 체험을 한 뒤 은퇴했다. 기독교 목회자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불우한 소년들을 돕기 위한 청소년 센터 건립 기금이 필요했다. 10년 만에 글러브를 끼고 돌아왔다. 목사가 된다고 했을 때 “네가? 복싱이나 해라” 소리를 들었고, 다시 복싱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 나이에? 목회나 해라” 소리를 들었을 남자. 포먼은 성격과 복싱 스타일이 달라진 ‘두 번째 조지(No.2 George)’로 링에 올랐다.
실패에서 배우면 더 강해진다. 영리하게 싸우는 법을 익힌 그는 1994년 최고령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마흔다섯 살. 그것을 기념해 ‘조지 포먼 그릴’이 세상에 나왔다. 1억개 이상 팔렸다는 이 양면 그릴은 스테이크나 햄버거 패티, 파니니를 굽기 좋았다. 이미지가 개선되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브랜드까지 히트한 사례. 성공학 강사로도 활동했다.
복싱 전문가들은 역사상 펀치력 1위로 포먼을 꼽는다(타이슨은 7위). 1991년 그를 상대한 이밴더 홀리필드는 “맞아본 펀치 중에 가장 아팠다”고 증언했다. 인생 전반전의 조지와 후반전의 조지 중엔 누가 고수일까. 포먼은 말했다. 복서로서나 인간으로서나 두 번째 조지가 더 낫다고. 실패를 통해 배우되 과거의 노예가 되진 말자고. 관 뚜껑을 닫고 돌아본다. 지글지글, 잘 구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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