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뉴욕과 더불어 글로벌 G2 도시가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인구 1000만명 안팎의 도시 중 서울만큼 풍부한 자원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 유럽 대도시 가운데 그 정도 규모는 런던, 파리, 모스크바 정도이며 미국에서는 뉴욕과 LA가 해당된다. 필자가 박사 과정을 거쳐 다년간 근무한 보스턴은 인구가 65만명에 불과하며, 대도시권까지 포함해도 490만명 수준이다. 미국 독립의 시발지였던 보스턴조차도 크지 않다.
1000만명 이상의 도시는 주로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서울은 단순한 대도시가 아니라 선진국 대한민국의 수도이기에, 중진국 혹은 후진국의 대도시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인도의 델리, 뭄바이, 콜카타, 방글라데시 다카 등을 서울과 비교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중국이라면 서울과 베이징 또는 상하이는 견줄 수 있다. 충칭, 광저우, 톈진과 비교할 경우 서울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결국 아시아권에서 서울과 대등하게 경쟁할 도시는 베이징, 상하이, 도쿄 정도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로 한계가 존재하며 역사가 일천하다. 그렇기에 싱가포르의 도시 개발 전략은 항상 새로운 건물에 치중한다. 역사 도시 서울과 비교하긴 힘들다.
(대)도시는 경제 성장과 혁신의 중심이기에,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국가 단위로 미국이나 중국과 경쟁해 글로벌 G2가 되기는 어렵지만 서울은 뉴욕, 베이징, 상하이, 도쿄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 필자는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서울이 글로벌 G2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발전 전략을 공유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서울의 경쟁력: 익선동의 변화를 통해 본 도시의 가치’다.
다음 사진은 2012년 서울 어느 마을 풍경이다. 자동차도 진입할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이 이어졌고, 일부 건물은 노후화돼 있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길에는 죽은 쥐가 보였고 건물 지붕은 누수로 인해 검은 비닐로 덮여 있었다. 고양이가 지붕을 넘나들었고 쪽방도 존재했다. 그런데 생활 환경이 이렇게 열악한 동네는 철거하고 고층 아파트를 건설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서울의 경쟁력을 파괴하는 일이다.
이곳은 지금 세계 관광객들로 미어터지는 ‘종로구 익선동’이다. 필자가 익선동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북촌 개발을 연구하면서 민족운동가 정세권 선생이 익선동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1년부터 지역 아카이빙을 해왔다. 당시 익선동은 저 사진처럼 매우 낙후됐고, 인근 부동산은 “지역을 살릴 방법은 재개발뿐인데, 공사용 차량이 진입하기 힘들어 비용이 너무 든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필자는 익선동의 큰 가능성에 주목했다. 특별한 통찰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보스턴, 뉴욕,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래 거주하며 변모하는 도시 공간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낙후된 지역이라도 역사성과 장소성, 경제적 기반이 있으면 충분히 재탄생할 수 있다. 익선동 역시 1920년대 형성된 한옥 집단 지구라는 역사성과 장소성, 국악·한복·보석 산업이라는 경제적 기반, 그리고 뛰어난 대중교통 접근성을 갖추고 있었다. 필자는 신문 기고와 ‘리씽킹 서울’ 출간으로 익선동의 가치를 알렸다. 다행히 2013년 익선동은 재개발 지역에서 해제됐다.
인스타그램 등 시각적 플랫폼이 급성장하면서 익선동의 매력은 예상보다 빠르게 20~30대 여성들에게 전파됐다. 그들은 ‘차별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익선동에 열광했다. 종로3가역에서 나왔을 때, 지방 중소 도시 같은 5층 건물이 있고, 자동차도 못 들어가는 골목이 존재하는데, 골목 안에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한옥 집단 지구를 만날 수 있고, 매우 힙한 문화 공간(카페와 레스토랑)이 한옥 안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아파트 세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익선동은 2016년부터 인파가 몰려드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20~30대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와 외국인들도 넘쳐 나기 시작했다. 필자가 익선동에 자주 간다고 하자 부친은 “서울대 교수가 종삼(종로3가)을 드나드느냐”며 책망했다. 집창촌이던 종삼의 과거가 투영됐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익선동은 이런 이미지를 극복하고 누구나 찾는 명소가 됐다.
핵심은 익선동이 기성세대에겐 후미지고 철거돼야 할 동네로 여겨질 수 있으나, 아파트 세대인 20~30대에겐 매우 차별적 경험을 제공하는 재미있는 동네라는 점이다. 이렇게 지역의 경쟁력이 새롭게 발현되는 경우, 기성세대와 외국인들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경쟁력 중 하나는 ‘역사적 자산’이다. 서울은 고려 시대 남경부터 시작해 1000년 역사를 지닌 도시다. 도쿄는 서울에 미치지 못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열면서 도시화가 진행돼 역사는 400년에 불과하다. 도쿄에는 대화재가 종종 발생했고 2차 대전 때 폭격도 받았기에,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19세기 이전까지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상하이 역시 마찬가지다. 볼 수 있는 역사자원은 19세기 중후반~20세기 초반 유럽식 건물과 스쿠먼 양식 정도다.
서울은 방대한 역사적 자원과 함께 자연 경관으로도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도시 안에 거대한 산(남산)이 있고 거대한 강이 도시를 관통하고, 도시를 둘러싼 산이 존재하고 국립공원이 도시 안에 존재한다. 도쿄, 상하이, 베이징은 평지다. 베이징은 산이랄 수 있는 것이 자금성 북쪽의 경산공원인데 우리에겐 언덕 정도다.
서울의 경쟁력을 다각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가치, 자연 경관, 그리고 현대적인 감각을 모두 갖춘 서울은 글로벌 G2 도시로 잠재력이 충분하다. 다음 글에서는 서울의 다른 경쟁력에 대해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