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로 식물 이름을 정확하게 고쳐 부르는 사람이 있다. 식당에서 일행이 “고들빼기 무침이 맛있다”고 하면 한 점 집으며 ‘고들빼기보다 벌씀바귀랑 벋음씀바귀가 더 많네’ 하고 속으로 말한다. 세 식물은 아주 비슷하게 생겼고 같은 장소에서 어울려 살며 뿌리가 길고 쓴맛이 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별하지 않고 나물로 쓴다.
“나물 중에서 취나물을 제일 좋아한다”고 누가 말하면 ‘다 같은 취나물이 아닙니다. 참취와 분취와 서덜취가 섞여 있어요’라고 중얼거린다. 목련이 꽃을 활짝 피웠다며 봄꽃 개화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고는 ‘저건 백목련이지’ 하고, 유채밭인 줄 알고 들어간 상춘객 무리를 건너다보며 ‘아이고, 그건 배추밭이고 저건 갓밭인데’ 하는 식으로 혼잣말이 이어진다.
허태임씨는 식물분류학자다. 신간 ‘숲을 읽는 사람’을 읽다가 그 전문성과 직업병에 놀랐다. DMZ 자생식물원을 거쳐 경북 봉화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에서 일한다. 우리 땅에서 사라져가는 식물을 지키려는 연구와, 훼손된 숲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요즘에는 안동, 의성, 청송 등 산불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서 현장 조사를 하느라 더 바빠졌다.
허씨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들으면 개살구나무가 누명을 뒤집어썼다며 억울해한다. 개살구나무는 우리 산야에 나는 자생종이고, 살구나무는 심어 기르는 중국 원산 외래종이라고 한다. 구별하기 위해 ‘개’를 붙였는데, 이젠 겉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다는 은유가 돼버렸다. 그녀는 “새콤함과 달콤함이 적절히 배합된 맛은 개살구나무 열매가 더 강하다”며 개살구를 변호한다.
이 식물분류학자는 식물들을 찾아가는 길을 만드는 일도 한다. GPS가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었지만, 허씨의 일터는 등산로 너머 길이 표시되지 않은 구간에 있다.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산속에서 희귀 식물 서식지를 살피며 좋은 데이터를 뽑아내려면 계절마다 여러 번 방문해야 한다. 그렇게 식물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의 언어로 옮긴다.
커피 앞에서도 그 원산지와 열매, 과육을 제거하는 공정, 커피로 추출되는 과정을 생각한다는 그녀는 “내 혼잣말은 직업병보다는 깊은 짝사랑에서 비롯된 상사병 아닌가 싶다”고 했다. “식물 편에 서고 싶고 그들을 대변하고 싶어 환청을 듣게 되고, 좋아한다고, 존재만으로도 고맙다고 말을 걸게 되는 증상”이다. ‘다름’을 무엇의 위나 아래로 두며 차별하지 않고 각각의 아름다움을 읽는 마음이 살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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