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배우의 마약 파문으로 뒤늦게 개봉한 영화 ‘승부’가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흥행 중이고, 마약 수사 암투극을 다룬 영화 ‘야당’이 곧 스크린에 걸린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 내외가 액상 대마 수수 미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주범에 대해 최근 징역 23년형이 확정됐다. 지난 2일 강릉에 입항한 외국 선박에서는 670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코카인 2톤이 적발됐다. 국내에서 적발한 단일 마약 사건 중 역대 최대 규모다.

대한민국은 1999년에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었고, 2023년 검거된 마약 사범은 2만명을 돌파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은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하는 암수 범죄는 적발된 경우의 50배쯤 된다고 한다”며 “국내에서 약 100만명이 상습적으로 마약에 손을 대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인천 가정동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 있는 인천참사랑병원은 한국 마약 중독 치료의 본산과 같다. 국내에서 마약 중독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의 3분의 2 정도가 이 민간 의료기관을 거친다. 천 원장은 마약 중독자만 전문으로 치료해 온 거의 유일한 의사이며, 교도소를 제일 많이 드나든 의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은 국내에서 마약 중독자만 전문으로 치료하는 거의 유일한 의사다. 그러나 천 원장은 "내가 치료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했다. "중독은 환자 스스로 견뎌내고 극복하는 겁니다. 저는 옆에서 같이 뛰면서 자세 고쳐주고 속도 조절해주는 페이스메이커일 뿐이에요."

◇세뱃돈 모아서 마약 사는 중학생

-현장에서 체감하는 실태는 어느 정도인가요.

“마약은 재작년이 다르고 작년이 다르고 올해가 또 다릅니다. 일주일에 제가 만나는 외래 환자만 100명인데, 저희 병원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어요.”

-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이 있다면.

“10년 전만 해도 마약중독자라고 하면 40~50대 남성이 혼자 필로폰을 투약하는 경우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는 환자의 80~90%가 30대 이하입니다. 지금 중학생도 입원해 있어요. 마약 종류나 방식도 너무 다양해졌고요.”

-그만큼 마약에 접근하기 쉬워졌다는 건가요.

“요즘 청소년들은 겁이 너무 없어요. 해외에서 대마 합법화 사례가 나오면서 마약에 대한 정서적 장벽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 보면 미국은 정재계 엘리트들이 마약을 하는 장면도 자주 나와요. 우리는 ‘노 엑시트(NO EXIT·출구가 없다)’를 마약 예방 구호로 삼았는데 참 공허해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압니다. 하지만 마약 하면서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거든요? 이런 현실과 인지적 갭이 생기니 호기심이 커지는 거예요.”

천 원장의 환자들 중에는 중고생도 많다. 세뱃돈을 모아서 살 수 있을 정도로 마약 가격이 싸졌고, 해외 직구 같은 ‘비대면 거래’가 가능할 정도로 진입 장벽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텔레그램으로 사지 않는 게 유행이라고 해요. 이른바 ‘던지기(특정 장소에 숨겨 놓으면 나중에 가져가는 수법)’에 쓰이는 장소를 중독자들은 뻔히 알잖아요. 반나절만 발품 팔고 다니면 마약을 공짜로 주울 정도로 흔해졌다는 겁니다.”

-값이 싸졌다고 마약을 사는 건 아닐 텐데.

“중독이 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어요. 자살률 1위, 청소년 행복지수 꼴등. 당장의 짜릿함이 아니라 건강한 여가를 누리며 자라야 하는데 그게 전혀 없습니다. 방구석에 처박혀 할 수 있는 가장 가성비 높은 쾌락. 그게 마약인 겁니다.”

◇24시간 합법 마약 처방?

천 원장은 의료계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중독성 처방 약물이 남용되면서 ‘합법적 마약’에 노출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필로폰과 비슷한 각성제 계통의 처방약을 다량으로 복용하거나, 펜타닐과 비슷한 신경안정제를 모아두고 마약을 구할 때까지 버틴다. 의료 접근성이 좋고 진료비가 저렴한 의료 선진국의 역설인 셈이다.

-극단적인 경우 아닐까요.

“전에는 제가 ‘극히 일부 의사들’이라고 말했지만, 요즘은 ‘일부 의사들’이라고 말합니다. 중독자들 대상으로 마약 장사하는 병원이 분명 있어요. 그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는 ‘어느 병원이 수월하다’ ‘쉽게 뚫린다’는 정보가 공유됩니다.”

-금방 적발되고 퇴출될 것 같은데요.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해외에서 들어온 래퍼들이 펜타닐 합법 루트를 뚫어냈어요. 미국에선 구하기 어려운데 한국에선 어느 병원에 가면 준다는 정보가 퍼진 거예요. 서울의 한 의원에서 할머니 의사가 24시간 야간 진료를 하면서 처방을 내줬습니다. 문제가 되자 그 의사라는 사람은 ‘애들이 아파하는 거를 차마 볼 수 없어서 가장 빠르게 통증을 없애는 약을 처방해준 것뿐’이라고 주장했어요. 의료인들의 잘못된 처방 행태를 입증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환자가 상습 투약을 자백해야 돼요.”

/법무부 전 정부는 2023년부터 '마약과의 전쟁'을 진행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작년 4월 취임 후 첫 정책 현장 방문 일정으로 인천참사랑병원을 찾았다. 천영훈 원장은 당시 중독성 처방 약물 오남용 문제 등을 지적했다.

◇천국인 줄 알았더니 지옥

-우리 사회가 그렇다고 하기엔, 힘들다고 모두 마약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처벌은 강력하게 해야 합니다. 다만 마약이 나쁘다는 걸 모른 채 마약 중독자가 되는 사람은 없어요. 뇌과학 측면에서 얼마나 치명적인지 눈높이에 맞게 충분히 알려줘야 합니다.”

-마약을 하면 뇌가 다친다고 하죠.

“알코올도 뇌를 망가뜨리지만 마약은 뇌를 녹여요. 220볼트 노트북에 100만볼트를 꽂는 것과 같습니다. 입원 환자들을 보면 원래 의대생이던 사람도 지금은 IQ가 80이 안 돼요.”

-범죄자이자 환자라는 거군요.

“마약 중독은 뇌 신경계통의 병입니다. 급성 맹장염으로 죽게 생겼는데 혈서 쓰면서 의지와 결심으로 참으라고 하면 그게 됩니까. 마약 중독자들이 좋아서 계속 하는 게 아니에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합니다.”

-한 번만 해도 중독되는 건가요.

“필로폰이 대표적으로 그렇습니다. 유명한 마약 수사관이 잠입했다가 그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단 한 번 했는데 중독자가 된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천영훈 원장이 매주 만나는 외래 환자만 100명 정도다. 주말까지 진료가 잡히는 경우도 많다. 이 병원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상태라고. 전국적으로는 마약 중독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거의 없다.

그는 마약 중독을 KTX에 비유했다. 열차에 오르면 처음에는 서서히 움직이는 것 같다. 충분히 내가 조종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차하면 뛰어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나면 도저히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속도로,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달려가 버린다.

-그 열차에서 스스로 내리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극히 드문 경우죠. 사실상 예외는 없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특히 필로폰 같은 경우는 당장 신체적 금단 증상이 없어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고들 생각해요. 하지만 ‘5초 전까지도 다시 약을 하면 내가 사람XX도 아니다’라고 했던 사람도 필로폰이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벌렁한다고 합니다.”

-영화 속 중독자의 모습은 아주 끔찍한데.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의 모습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말기암 환자에게는 항암 치료 안 하고 진통제 주는 게 최선입니다. 유오성 단계까지 가기 전에 치료해야 하는 거죠. 펜타닐의 경우는 필로폰과 반대로 금단 증상이 심해요. 척추 마디마디에 칼을 꽂는 것 같다고 하고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다 물이 나옵니다. 금단 증상이 심하게 온 친구를 병상에 묶어뒀더니 정말 침대가 튀더라고요.”

마약 중독자들은 자신을 ‘천국을 엿본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필로폰을 투여하면 오르가슴을 느낄 때 분비되는 엔도르핀의 30~100배가 최장 72시간 동안 쏟아진다. 바닥을 구르며 살던 사람이 갑자기 구름 위를 걷는다. 그러다 72시간이 지나면? 끝없는 낙하가 시작된다. 지옥행 급행열차를 탄 것과 같다.

◇“나는 운이 좋았다”

천 원장에게도 아픈 가족사가 있다. 엘리트 의사였던 고모부가 의료 사고로 우울증에 시달리다 아편계 진통제에 중독됐고, 부부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저는 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에는 옆에서 마약을 한 사람이 없었어요. 친한 형이, 동료가, ‘고생했는데 오늘 너도 기분 좀 내봐’라고 권했다면, 소심한 A형이니 몇 차례 거절했겠지만, 결국 객기를 부렸을지도 몰라요.”

-공감합니다.

“많은 사람이 내 주변의 문제가 아니니 중독자들을 타자화·악마화해요. 하지만 지금 마약이 번지는 속도로 보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닙니다.”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할 텐데요.

“우리 사회는 마약 통제가 가능한 조건도 충분히 갖춰져 있어요. 의료 접근성이 좋고, 경찰력·행정력이 탄탄하고, 지역사회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고, 교육열이 강합니다. 어린애들은 텔레그램으로 거래하면 절대 안 걸린다고 믿는데, 100% 잡혀요. 마약상 잡으면 그런 ‘잔챙이’ 거래 기록부터 바로 제출합니다.”

-전 정부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시점이에요. 늘어난 R&D 예산을 더 적확한 곳에 잘 써야 하고, 교육청마다 다른 마약 중독 예방 교재 등을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기를 잘 넘기면 마약을 막아낸 사회가 될 수도 있어요. 컨트롤타워가 시급합니다.”

/인천참사랑병원 제공 천영훈 원장(가운데)이 마약 중독 환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약 중독 치료는 정신과 중에도 비인기 전공이다. 후회는 없는지 물었다. “병원이 망하면 후회하려나요(웃음).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일주일간 뭐 때문에 웃었나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제일 열받고 힘들었던 게 다 환자들 때문이었는데 가장 호탕하게 웃고 기분 좋았던 것도 환자들과 면담할 때였습니다. 마약 중독을 극복하고 ‘회복자 상담사’가 된 분도 많아요.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 일이 주는 큰 보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