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임명 이틀 만에 탄핵한 명분은 ‘방통위의 정원은 다섯 명인데, 단 두 명이 KBS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법을 위반했다’는 것. 하지만 방통위에 위원장과 부위원장, 구성원 단 두 명밖에 없었던 건 국회 몫으로 할당된 3명을 국회가 추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영방송을 좌파가 장악하기 위한 의도적 방통위 마비로 보이는데, 작년 11월 열린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첫 변론에서 문형배 재판관은 이 점을 지적한다. “왜 국회는 방통위원을 추천하지 않았나?” 국회 측 변호인이 “여야 합의가 안 돼서 그랬다”고 변명하자 문형배는 이렇게 반박한다. “합의가 안 되면 국회는 아무 결정 안 하나? 여태까지 안 했는가?”
그 자리에 있던 정청래가 일순 당황한다. 그가 속한 민주당은 다수당이란 이유로 수많은 법률을 여당 반대에도 단독 처리하지 않았는가? 김형두 재판관도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헌재나 방통위 같은 국가기관들은, 국회가 (조직을) 구성해 줄 때까지 역할을 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는 게 옳으냐?” 결국 이진숙은 탄핵이 기각돼 방통위원장에 복귀했지만, 재판관 4명은 “방통위법을 위반한 것이고,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위반 정도가 중대하다”며 인용 의견을 냈다. 더 놀라운 점은 정청래를 질타한 문형배도 그 넷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방통위원장에 복귀한 이진숙은 시급한 현안을 쳐내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3월 7일 임기가 만료되는 EBS 사장 임명이었다. 야당은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고 반발했지만, 윤 정부가 방송을 장악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건 민주당 방송으로 알려진 MBC가 잘 유지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방통위는 3월 26일, MBC 출신으로 2년 전부터 EBS 이사로 활동 중인 신동호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일자리를 받았으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신동호는 EBS 사장 일을 단 하루도 수행하지 못했다. 출근 첫날부터 민노총 언론조노가 출근 저지 투쟁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반대한 명분은 다음과 같았다. “위법 방통위의 신 사장 선임 거부한다” “내란 세력의 언론 장악 알박기다.” 방통위가 위법이라는 건 헌재에서 이미 논파된 바 있고, 알박기라고? 이전 사장이던 김유열도 대선을 일주일 앞둔 2022년 3월 3일에 임명됐는데? 출근 저지는 그 뒤로도 계속됐다. 일이 하고 싶었던 신동호는 여러 차례 사옥 진입을 시도했지만, 노조 측의 철통 방어로 성과 없이 돌아갔다.
국가기관이 임명한 사장이 노조의 폭력에 굴복한 것, 이걸 보면 이 나라가 무법천지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물론 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전 사장 김유열이 법원에 임명 정지 신청을 내자 재판부가 “사장 임명에 절차적 하자 가능성”을 언급하며 김씨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신동호 사장의 출근 투쟁은 이렇게 12일 만에 막을 내렸으니, 법이란 게 대체 누구를 위해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그런데 EBS 노조는 정말 사장 임명에 법적 하자가 있어서 반대한 것일까? 현재도 EBS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유시춘을 보자. 유시민의 누나라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교육 경력도 없는 데다, 2017년 대선에서 꽃할배 유세단으로 활동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고, 이사장 임명 직전에 아들이 마약 밀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EBS 이사장으로서는 부적격 인물이었다. 심지어 EBS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법인 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해 검찰에 기소당하기까지 한 바 있는데, EBS 노조는 이런 이가 8년째 이사장직을 수행하는 데 어떠한 반대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사실 ‘위법’ 운운은 핑계일 뿐, 노조에게는 보수 정당에서 비례대표로 선거에 나간 적 있는 신동호의 정치 성향이 결격 사유였던 거다. 방송사 재승인 때 TV조선을 떨어뜨리려고 점수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는 한상혁에겐 아무 말도 안 하는 노조가 이진숙에겐 유독 날이 선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민주당 최민희는 국회 과방위에서 노조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공동체에 불과하다며 노조 편을 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대한민국에서 노조는 가장 과격한 정치 집단 같다.
문재인 정권 때 있었던 민주당의 방송 장악 사태를 보라. ‘임기가 남은, 보수 성향의 공영방송 사장을 쫓아내고 싶지만, 정치권이 나서면 언론 탄압으로 비칠 수 있으므로 방송사 구성원을 중심으로 사장 퇴진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문건이 민주당 연찬회에서 공유된 건 2017년 8월, 그다음 달부터 KBS와 MBC 노조는 총파업에 들어갔고, 야당 몫으로 임명된 이사들을 쫓아내기 위해 직장까지 찾아가 행패를 벌인다. 결국 KBS 고대영과 MBC 김장겸 사장은 임기도 못 채운 채 쫓겨났고, 민주당과 합이 잘 맞는 인물들이 사장에 임명됐는데, 사장이 잘린 뒤 ‘우리가 이겼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하던 노조원들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런 자들을 과격한 정치 집단 말고 달리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문제는 이들의 행위가 법 테두리 안에 있지도 않다는 점. 예컨대 고대영 사장은 훗날 자신의 해임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걸었고, 결국 승소했다. 민주당과 민노총이 짜고 한 짓이 다 위법이라는 얘기지만, 노조는 처벌은커녕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다. 2021년 민노총 택배 노조 조합원들이 경기도 김포의 택배 대리점 소장을 집단으로 괴롭혀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 적이 있었다. 노조원 수십 명이 동원된 집단 괴롭힘의 대표적 사례였건만, 기소된 것은 노조원 한 명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벌금 100만원 선고에 그쳤으니, 가히 법 위에 있는 존재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공수처가 윤 대통령 체포 작전을 펼치던 작년 말 민노총은 이런 성명을 낸다. “체포가 집행되지 않으면 직접 체포에 나서겠다.” 가장 이해 안 되는 점은 바로 다음, 정상적 집단이라면 구성원 한 명이 간첩질을 한 경우 단체가 더 이상 존속되지 못하겠지만, 민노총은 자기네 간부가 아무리 간첩질을 하고, 재판에서 중형이 선고돼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집회·시위가 제한됐던 코로나 시국에 유유히 시위에 나섬으로써 ‘민노총 빨간 조끼는 코로나도 못 뚫는다’는 말까지 나오게 했던 민노총. 이런 집단이 계속 나라를 좌우하는 한, 대한민국의 앞날은 점점 어두워질 것 같다.
바야흐로 대선 철이다. 지난 대선 때의 장기표 선생님처럼, 이번 대선에서도 ‘민노총 해체’를 공약으로 내거는 후보가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