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하면 그 화장실이 떠오른다. 10여 년 전 출장 갔다가 펍에서 기네스 맥주를 몇 잔 마시고 아일랜드 남자 서너 명과 소변기 앞에 서 있었다. 다들 불콰해진 채로. 바지 지퍼를 내린 한 남자가 노래를 배설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다들 따라 부르는 것 아닌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진취적인 합창. 볼일을 마친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낯선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노래로 하나가 된 셈이다.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 ‘원스’를 보다가 그때 감정이 되살아났다. 무대는 더블린의 펍. 관객이 올라가 와인이나 주스를 마시고 피아노와 거울 등을 촬영할 수 있다.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이야기의 일부가 된 기분이랄까. ‘그’와 ‘그녀’로만 불리는 남녀 주인공에게 빠져들기 쉬운 구조다. 모든 걸 포기하려는 그를 향해 그녀가 객석 통로로 들어오며 조명이 꺼지고 어느새 공연이 시작된다.
아일랜드 청년인 그는 실패한 연애로 괴로워하며 진공청소기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다.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그와 마주친 체코 출신 그녀는 “흡입이 안 된다”며 진공청소기를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수리비는 음악으로 지불하겠다면서. 그는 기타,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너를 원해/ 널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으로 흘러가는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를 노래한다.
뮤지컬 ‘원스’에서 배우들은 오케스트라를 겸한다. 기타가 속도와 템포를 결정하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드럼 등 모두 16개의 악기를 쓴다. 라이브 연주로 사건을 진행시키고 상처를 보듬고 용기를 북돋운다. 음악은 고장 난 진공청소기의 수리비로, 은행 대출을 받는 담보로, 마음이 드나드는 출입문으로, 다양한 쓸모를 증명한다.
이 뮤지컬은 ‘아일랜드 포크’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음정과 박자는 술 한 잔 걸치고 부르는 노래처럼 자유롭다. 낡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정서를 뭉쳐 던진다.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데 생각이 이토록 다를 수 있나, 싶다가도 어떤 노래 앞에서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 벽을 허무는 음악의 힘이다. 말로 할 수 없는 것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는 것을 음악은 표현한다.
관계는 어긋나지만 화음은 완전해지는 결말. 제목은 왜 ‘원스(Once)’일까. 해석은 세 갈래다. “음반을 만들기만 한다면(once I make a record)” 같은 꿈이 하나,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 식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하나, “한번(once)의 키스” 같은 만남이 하나다.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메아리처럼 재생되는 음악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늦지 않았어/ 저 배를 타/ 내 손을 잡아~.” 5월 31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 QR코드에 휴대폰을 갖다 대거나, 인터넷 주소창에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743 을 넣으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 ‘이메일 주소’와 ‘존함’을 적고 ‘구독하기’를 누르면 이메일로 뉴스레터가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