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고 화창한 봄에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5월 초 황금연휴가 코앞이다. 직장인은 달력만 봐도 설레는데 고민이 하나 있다. 모르는 사람과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자고, 밥 먹으며, 일정을 같이하는 단체 여행을 하자니 마음이 불편하다. 하나하나 스스로 계획을 짜고, 미리 예약해야 하는 자유 여행을 하자니 가기 전부터 피곤이 몰려온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따로 또 같이’ 하는 짧은 여행 프로그램이 인기다. 차량 같은 이동 수단이나 가이드의 설명 등을 곁들인 3~4시간짜리 여행 상품들이다. 전체 일정을 함께하거나 모든 걸 혼자 해야 하는 여행 상품의 양 극단을 절충해 특정 시간만 쪼개 파는 것이다.
봄기운이 올라오던 지난 3월 22일, 전남 목포로 향했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3시간이 걸리는 곳. 차를 빌려야 하나 싶었지만 숙소에 딸린 ‘레트로 도심 투어’ 패키지가 눈에 들어왔다. 호텔현대 바이 라한 목포가 로컬 청년 기업 ‘괜찮아마을’과 함께 내놓은 상품으로 2인용 객실과 도심 투어 프로그램 가격이 10만원대 중후반부터 시작한다. 국내 1호 청년 마을인 괜찮아마을은 가이드를 곁들인 전남 목포와 진도, 해남의 짧은 로컬 투어 상품 12종을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상품이 3~4시간짜리로 최소 4명만 모이면 출발 가능.
전용 차량으로 이동하며 가이드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는 말에 “우선 차량 렌트비는 굳었다” 싶었다. 젊은 가이드들이 숨겨진 관광 장소를 찾아주고 여행 중간중간 찍은 기념사진을 수준급으로 보정해 제공하는 것도 장점. 이날 곧바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업데이트했다. 점심·저녁은 제공하지 않지만 모르는 사람과 얼굴 맞대고 밥 먹기 부담스러운 사람에겐 이것이 장점이다.
3시간가량 투어를 함께한 강희정(66)씨는 “차량과 가이드가 제공되는 단체 여행의 장점과 자유롭게 일정을 짤 수 있는 개별 여행의 장점만 취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부산에서는 요트를 타고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같은 명소를 돌아보는 50분짜리 투어가, 경주에서는 2시간짜리 야경 투어가 ‘짧은 여행 상품’으로 인기다.
국내뿐 아니다. 해외에서도 2~3시간으로 시간을 쪼갠 여행 프로그램이 유행한다.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에 접속하니 3시간짜리 ‘하노이 길거리 음식 투어’가 추천 상품으로 떴다. 1인당 28달러(약 4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가이드와 함께 쌀국수와 베트남식 튀긴 도넛, 미니 팬케이크를 먹으며 음식과 문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석해 후기를 남긴 사람만 3638명에 달한다.
베트남 중부 지역에 있는 아난타라호텔 호이안은 숙박객을 대상으로 현지 토박이 가이드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트리트 푸드 투어’를 제공한다. 책과 영화로 유명한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국 에든버러 여행 일정에 2시간짜리 ‘해리포터 워킹 투어’를 넣을 수도 있다. 대만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서는 한국어로 역사와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2시간 30분짜리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관광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지역과 상생을 고민하는 관광업계의 사회적 책임, 여행도 ‘맞춤형’으로 구성하고 싶은 소비자의 요구가 서로 맞아떨어졌다는 해석. ‘쪼개 파는 여행’ 또 어디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