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불법 집회에 참가한 노조원 3명이 16~17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질병관리청이 밝혔다. 민노총이 8000여 명이 참석한 집회를 강행한 지 13일 만에 첫 확진자가 나오자 시민과 전문가 사이에선 “민노총 집회발(發) 집단감염이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18일 “민노총 집회 참석자에 대한 진단 검사 행정명령을 17일 내리고, 집회 참석자 명단을 제출하라고 민노총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민노총의 불법 집회 이후 “집회 참가자에 대한 선제적 검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방역 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첫 확진자가 나온 17일에야 행정 조치에 나선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참석자 전원에게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즉시 진단 검사를 받아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수만 명이 모인 광복절 집회 다음 날 정부는 집회 참가자에게 선제 검사를 권고했고, 일부 지자체는 진단 검사 행정명령까지 내렸다. 반면 민노총 불법 집회에 대해선 지난 2주간 “집회 관련 확진자가 나오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할 뿐 선제 검사 권고조차 하지 않았다. 주 52시간,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경제·노동 문제뿐 아니라 방역에서도 정부가 민노총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방역은 선제 대응이 기본 원칙인데 민노총 집회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면서 “이번에 나온 확진자가 집회발 집단감염의 시작점이 될 수 있고, 정부가 ‘골든 타임'을 놓친 사이에 이미 전국적 확산이 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6조의 2’ 규정상 감염 차단을 위해 감염 의심자의 휴대전화 위치 정보 등을 요구할 수 있지만 2주 동안 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방역 당국은 “통신 자료 추적 등은 행사 참석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데, 민노총 집회는 참석자를 특정할 수 있어 통신 기록 추적 계획이 없다”고 했다. 민노총이 자발적으로 집회 참석자 명단을 제출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이날 민노총이 “질병청이 감염원을 7월 3일 집회인 양 왜곡하고 있다”며 반발하자 질병청은 “확진자들의 증상 발생일이 14~16일인 점을 고려할 때 집회에서의 감염 가능성이 높지는 않으나 최장 잠복기(14일) 범위에 있어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순 없다”고 밝혔다.
8·15집회 땐 통신·카드·CCTV로 이잡듯… 민노총엔 팔짱
지난 3일 민주노총의 불법 집회에 참가한 조합원 중 확진자가 나오면서 ‘정치 방역’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일반 국민과 자영업자 등에게는 선제 검사와 집합 금지 등 엄격한 방역 수칙을 주문한 정부가 민노총 집회는 방관하다시피 하며 사태를 키운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민노총 집회 확진자가 나오기 전까지 선제 검사를 권고하지 않았다. “선제 검사할 역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지난 7일부터 확진자가 1000명대로 급증하자 “수도권은 1가구당 1명이 진단 검사를 받아달라” “젊은 층도 증상 유무와 무관하게 검사를 받아달라”고 했다. 일반 국민에게는 역학적 근거가 없어도 최대한 많이 검사를 받으라고 하면서 민노총엔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복절 집회는 강경 대응… 민노총 집회는 관망
지난해 광복절 집회 이후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사법·방역 조치를 동원했다. 집회 다음 날인 16일 보건복지부는 집회를 주최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 목사를 향해 “국가 방역 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며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한 지 3시간 만이었다.
광화문 집회 사흘 뒤인 18일 첫 확진자가 나오자, 경찰은 방역 당국 요청으로 통신 3사에 광화문 집회 장소 근처 기지국 접속 정보를 요청했고 하루 만에 제출받았다. 통신 기지국 접속 정보와 함께 신용카드 사용 내역, 폐쇄회로(CC) TV 등으로 집회 참가자 파악에 나섰다. 집회 6일 뒤인 21일 이후엔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등에 대한 압수 수색이 이어졌다.
당시 정부는 집회 참가자에 대해 전수 검사를 받으라는 권고를 내렸고 일부 지자체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참석자 650여 명이 확진돼 ‘광복절 집회 관련 확진자’로 분류됐다.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확진자들이 집회에서 감염된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데 모두 ‘집회 관련 확진자’로 분류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라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번 민노총 집회에는 선제적 방역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광복절 집회는 앞서 사랑제일교회 집단감염이 나왔고, 교회 신도들이 집회에 참석한 역학적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전수 검사 등이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집회 참석자들이 누구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신 기록, 신용카드 사용 내역 추적 등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17일 저녁 민주노총에 참석자 명단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며 “통신 기록 추적은 특정 행사에 불특정 사람들이 모여들어 참석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하는 것”이라고 했다. 명단 제출 요구에 대해 민노총은 18일 저녁까지 특별한 입장을 전달해 오지 않았다고 정부는 밝혔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집단감염의 위험이 있는 불법 집회에 선제 대응이라는 방역의 기본적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내로남불·편 가르기 방역
정부는 정권·여당에 우호적인 집회·행사는 여러 사유를 대며 암묵적으로 허용한 반면 정권·여당에 비판적인 집회·행사는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광복절 집회 한 달 전 서울시는 지난해 7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를 서울시청 앞에 설치했고 2만여 명이 다녀갔지만 제지하지 않았다. 지난 2월 서울광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강행돼 추모객 1000여 명이 모였을 때도 경찰은 “관혼상제는 집회시위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방관했다.
반면 지난 3월 1일 보수 단체들이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자 정부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 대규모 펜스를 설치하고 경찰 수천여 명을 배치해 집회를 막았다. 지난 16일에도 정부 방역에 항의하는 자영업자들이 차량 시위에 나섰지만 경찰의 제지에 가로막혔다. 시위를 시도한 자영업자들은 “왜 우리만 방역으로 차별받고 계속 희생해야 하냐”고 했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특정 계층·집단에 책임을 몰아세우는 현 정권의 편 가르기 정치, ‘내로남불’ 정치가 방역에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