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각) 미 제약사 화이자의 앨버트 불라 CEO는 “개발 중인 먹는 코로나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효과가 매우 좋다(very effective)”고 말했다. 화이자에 따르면, 백신 미접종자 중 비만이거나 당뇨병·심장병 등 고위험군인 코로나 환자 1219명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한 결과 실제 팍스로비드를 복용한 775명은 위약(僞藥)을 먹은 다른 환자군에 비해 입원·사망이 89% 감소했다. 코로나에 감염된 지 5일이 지나고 투약해도 입원·사망 예방 효과가 85%로 높게 나타났다. 앞서 머크사가 개발한 먹는 치료제 ‘몰누피라비르’가 약 50%의 입원·사망 예방 효과를 보인 것에 비해 더 긍정적인 결과다.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효과가 예상보다 훨씬 좋다”며 “이번 결과가 최종 임상 시험 결과까지 이어져 긴급 사용 승인까지 된다면 중환자 병상 확보와 단계적 일상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상용화된 백신에 치료제까지 더해지면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종식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간 전문가들은 “코로나의 특성상 치료제가 없으면 완전한 ‘위드 코로나’는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신종플루 당시 타미플루와 같은 치료제가 있어야 실질적인 일상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009년 5월 신종플루가 멕시코에서 처음 발생해 사망자가 150명 넘게 나오고 각국으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전 세계는 금세 공포에 휩싸였다. 국내에서는 그해 7월부터 감염자가 늘기 시작해 8월에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후 유행이 퍼지면서 일부 지역은 휴교령이 내려지는 등 혼란과 공포가 퍼졌다. 하지만 타미플루가 본격 사용되고 신종플루 백신이 조기 생산·도입되면서 이듬해 무렵에는 계절 독감 수준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2010년 8월까지 국내에서 약 76만명이 감염됐고 270명이 사망해 치명률은 0.035%였다. 독감 치명률은 0.04~0.08% 수준이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타미플루 자체는 효과가 뛰어난 약은 아니었고 유행 억제에는 치료제가 아닌 백신의 역할이 컸다”며 “하지만 타미플루는 감염 후 48시간 내에 복용하면 중증·사망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 치료를 돕고 인명 피해를 줄이면서 사회가 안정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코로나는 치명률과 전파력이 신종플루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백신에 치료제까지 더해져야 재택 치료가 확대되고 의료 체계의 부담이 줄어 일상 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팍스로비드도 타미플루처럼 감염 초기에 먹는 치료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신체 내에서 증식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억제하는 방식의 치료제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인 리토나비르와 혼합된 알약 형태다. 5일간 하루에 2번 3알씩 총 30알을 먹는다. 머크의 몰누피라비르는 5일간 하루에 2번 4알씩 총 40알을 먹는다.
팍스로비드는 코로나 초기 환자의 입원 및 사망 확률을 89% 낮춰줄 뿐 아니라 감염 후 48시간 내에 복용해야 했던 타미플루보다 투약 가능 시기가 3일 더 길다. 건강상의 이유로 백신을 접종받지 못하거나 돌파 감염된 사람을 치료·보호하는 데 먹는 치료제가 톡톡히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화이자는 올 연말까지 팍스로비드 18만명분, 내년에는 5000만명분을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할 계획이다. 문제는 비싼 가격이다. 미 현지 언론들은 팍스로비드의 1명분 초기 가격이 약 700달러(약 83만원)로 몰누피라비르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정부는 화이자와 치료제 7만명분 구매 약관을 이미 체결했고 머크의 몰누피라비르는 20만명분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정부는 13만4000여 명분의 치료제를 추가로 구매하기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료제가 개발·상용화돼도 백신은 계속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교수는 “먹는 치료제는 감염되고 단시간 내에 복용할 경우 중환자나 사망자가 될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효과 정도에 그치지만, 백신은 감염과 중증·사망을 예방하는 효과까지 있기 때문에 백신과 치료제 효과를 혼동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아무리 좋은 치료제도 백신을 능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