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신 분들이 오면 야간 근무 힘들까 봐… 솔직히 입주민들이 나이 드신 분들보다는 젊은 분들이 업무도 잘하니까 선호하기도 하고요.”

서울 마포구 염리동 B아파트는 최근 경비원을 새로 구하면서 요건으로 ‘20~45세’ 나이 제한을 뒀다. 구인 공고가 나온 인력 업체에 왜 나이를 제한하는지 물었더니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파트 경비원도 나이 제한

본지가 구인 사이트 ‘알바몬’을 통해 아파트 경비원 구인 현황을 살펴보니, 나이 앞자리가 ‘5′나 ‘6′으로만 시작해도 경비원 지원을 못 하는 곳이 상당했다<표 참조>. 심지어 천안시 A아파트는 경비원을 나이 35세 아래로만 뽑는다고 못 박았다. 나이를 문제 삼아 차별하는 행태를 ‘연령주의(ageism)’라고 부르는데 이 같은 움직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게 세계보건기구(WHO) 판단이다.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WHO ‘연령주의 국제보고서’ 번역본을 10일 펴내고 ‘연령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인 1000만 시대… 차별 여전

연령주의란 예컨대 ‘노인은 모두 기억력이 깜빡깜빡할 거야’ ‘어린애들은 뭘 알겠어’ 등처럼 특정 연령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걸 가리킨다. 성차별, 인종차별과 함께 3대 차별로 꼽힌다.

특히 한국에선 노인을 둘러싼 연령주의가 문제다. 한국은 2025년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며 ‘노인 대국’을 코앞에 두고 있다. 노인에 대한 연령주의 편견은 노인을 생산성 가치로만 따져 무기력하고 무능한 존재라고 매도한다. 이는 결국 세대를 대립시키고, 노인이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한다는 게 보고서 내용이다.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종합보고서 작성을 위한 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나이로 인한 차별을 경험했다는 노인은 21.0%로 집계됐다. 5명 중 1명꼴이다. 정부 ‘시니어 인턴십’ 담당자들은 은발을 휘날리며 능숙하게 컴퓨터를 다루고, 직접 라이더(배달원)로 뛰는 60~70대가 적지 않았다고 전한다. 결국 관건은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 등 노인 혐오 용어가 만연하며 고령층을 무능력자로 단정하는 사회 분위기다.

코로나 시국에서도 고령자들이 의료 현장에서 뒤 순위로 밀리는 경우도 적잖았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3차 대유행 시기엔 노인 환자가 많아서 어차피 상태가 악화하기 십상이라 진료를 볼 때도 부담이 적었다”며 “이번 4차 대유행 이후엔 젊은 중증 환자가 많아져 더 진료를 많이 해야 해 의료 부담이 크다”고 했다. 젊은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이미 의료진 머릿속에 강하다는 뜻이다.

코로나 유행 당시 영국에선 초기에 70세 이상 노인들에게만 4개월간 자가 격리 지침을 내렸고, 콜롬비아와 세르비아 역시 노인들만 봉쇄 조치를 감행했다. WHO는 “(건강 상태 등 다른 요건을 고려하지 않고)나이를 신체적 격리 조치 등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건 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나이는 중요하다”

‘연령주의’가 노인에게만 국한한 현상은 아니다. 젊은 층도 ‘나이 탓’에 무시당하거나, 응시 자격 제한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공무원임용시험령에 따르면 7급 이상 공무원은 20세 이상,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7세 이상 21세 미만으로 연령을 제한하고 있다. WHO는 “직장에서 나이가 어린 직원들은 자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근거 없이 얕잡아 보는 언행에 시달린다”고 했다.

일본은 아베 전 총리 시절, 나이와 상관 없이 차별받지 않고 일하는 ‘에이지리스(ageless)’ 사회를 선언하고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조정이나 퇴직 정년 70세 연장 등 ‘연령 파괴’ 정책을 시작했다. 호주도 ‘모든 나이는 중요하다(EveryAGE Counts)’는 캠페인을 통해 이런 추세에 동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기대 수명(83.3세)이 늘면서 누구나 노인으로 20~30년을 지내야 한다”면서 “과거 노인은 존경받는 대상이었는데 이젠 약하고 부담스러운 존재로만 각인되고 있다”고 했다. 노인 기본 인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누구나 늙을 수 있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 그것이 곧 나 자신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령주의

연령에 따라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갖는 고정관념, 편견 및 차별을 가리킨다. 1969년 미국 노인학자이자 국립노화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었던 로버트 버틀러가 처음 연령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모든 세기, 국가, 문화에 걸쳐 존재하는 연령주의는 세대를 대립시키며 젊은 층이나 노인층이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