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10시쯤 서울 관악구 한 요양원. 코로나 확진자로 치료받던 85세 노인이 갑자기 호흡 곤란을 겪는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혈중 산소 농도(산소포화도)도 떨어져 위급한 상태. 방호복을 입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응급 처치를 하고 산소를 공급한 뒤 인근 병원 중환자 병상으로 옮기려 했지만 남는 병상이 없었다. 대원들은 환자 상태를 확인하면서 병원마다 전화를 돌렸다. 애타게 남는 병상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4시간이 흘렀다. 구급차 속 산소통마저 거의 바닥나자 다른 119안전센터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대원들이 임무 교대를 하고 다시 20시간이 지나서야 인천 한 병원에 병상이 나와 환자를 병상에 누일 수 있었다. 다음 날 오후 9시 34분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의료 체계 전반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환자로 중환자 병상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그 후폭풍이 번지고 있다. 119구급대는 그동안에도 코로나 중환자 이송·관리에 애를 먹었는데 정부가 코로나 환자 재택 치료까지 확대하면서 부담이 늘었다. 코로나 중환자에게 구급 역량이 쏠려 다른 응급 환자들을 제때 돌보지 못하는 공백 현상이 심해진다는 현장 경고가 커지고 있다.
119센터뿐 아니다. 일선 병원도 심각한 상황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9일 “현장에서는 언론에 노출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며 “응급실과 코로나 병동은 아수라장이고, 하루에도 수십 명씩 병원에서 제때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사망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0시 기준 수도권 병상 대기 코로나 환자는 1003명으로, 10일 만에 다시 1000명대를 넘었다.
정부는 이에 코로나 백신 ‘추가 접종(부스터샷)’ 기간 단축 카드를 꺼냈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 60세 이상 4개월, 18~59세 5개월인 백신 3차 접종 간격을 3개월로 통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르면 10일 발표할 예정이다.
코로나 재택 치료자는 호흡 곤란 등 증상이 발생하면, 환자·보호자가 지자체 재택 치료 관리팀에 연락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급한 마음에 익숙한 119에 곧바로 전화하곤 한다. 신고를 받으면 119 대원들은 일단 출동해 경증·중증 여부를 판단한다. 경증이면 복귀하지만 중증이면 병상을 배정할 때까지 환자 곁을 지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일선 소방서 구급대원들이 코로나 환자를 맡는 동안 소방력 공백이 발생한다는 게 소방서 설명이다. 서울 한 소방서 재난관리과장은 “30분 만에 병상을 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몇 시간 동안 대원들이 현장을 지키며 전화를 돌리는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사실 병상 배정은 보건소 업무지만 구급대원들도 급한 마음에 같이 전화기를 붙잡는 셈이다.
지난 5일 0시 30분쯤 서울 한 주택에서 걸려온 119 신고 전화 역시 재택 치료를 받던 코로나 확진자 호흡 곤란 사례였다. 119가 출동해보니 60대 환자 산소포화도가 80% 아래인 중증이었다.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느라 2시간마다 차량을 교체해 총 4대 구급차가 동원됐다. 구급대원들은 밤을 새우며 곁을 지켰고 이날 오전 8시 50분에야 병상이 나와 구급차가 센터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코로나 중환자 병상은 전국 1255개 중 989개가 가동 중이다. 가동률은 78.8%이며 수도권은 85.0%다. 중환자 병상뿐 아니라 정도가 약간 나은 준중환자 병상 가동률도 수도권이 73%에 달해 포화에 가깝다. 중환자 병상이 차 있다 보니 준중증 환자가 중환자 병상으로 제때 이송되지 못해 준중증 병상 포화도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인천과 경기에서는 준중증 환자 병상을 새로 118개 확보했음에도 입원 가능한 병상은 2주 만에 오히려 152개가 감소했다. 환자 증가 속도를 병상 확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최근 서울에서 병상이 확보되지 않아 경북 영주·칠곡으로도 환자를 이송한 적이 있다”고 했다. 9일 0시 기준 수도권 병상 대기 코로나 환자는 1003명이다. 70세 이상 고령이 454명, 고혈압·당뇨 등과 기타 질환을 같이 앓는 환자가 549명이다. 지난 5주간 병상을 기다리다 사망한 코로나 환자만 29명에 이른다.
현장 의료진은 정부가 정치적 고려를 하지 말고 현실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의료 전문가는 “일부 국립·공공병원을 코로나 중증 환자 전담 병원으로 정하고 해당 병원 내 모든 병상과 의료 인력을 코로나 중환자 치료를 맡게 하는 수밖에 없다”며 “공공 병원 지도부와 정부가 병원 노조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간 병원 병상과 인력을 계속 동원하는 임시책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이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재택 치료 체계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 의료계 인사는 “재택 치료 중 중환자가 되는 비율은 1~2% 수준인데, 이런 환자들을 조기에 파악하려면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가 직접 원격 진료를 해야 한다”며 “의원급 의사들이 직접 원격 진료로 재택 환자들을 진료하도록 지침을 바꿔야 재택 중 사망하는 사례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