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 연휴 기간(1월 25~29일) 응급실을 찾은 경증 환자가 작년 설 연휴 대비 40.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휴 응급실 이용 환자 중 경증 환자 비율은 작년 설 63.9%에서 작년 추석 58.5%, 올해 설엔 53.5%까지 줄었다. 대다수 의료진이 연휴에도 평소처럼 응급실을 지키고, 경증 환자가 분산돼 응급실이 중증 환자 위주로 운영되면서 일각에서 우려했던 ‘응급실 대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일 “환자 대기가 길어진 경우 등은 있었지만, 의료 공백으로 인한 큰 불상사나 혼란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래픽=송윤혜

경증·비응급 환자는 환자 중증도를 나누는 기준인 KTAS(한국형 중증도 분류)에서 4~5단계에 해당한다. 이들의 응급실 과다 이용과 의정 사태 후 응급실 의사 부족으로 작년 추석을 앞두고는 ‘응급실 대란’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추석에 이어 올해 설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응급 의료 체계가 유지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의정 사태 장기화로 작년 하반기부터 ‘경증 환자는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우리 국민의 병원 이용 문화 자체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 9월부터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면 진료비의 90%(종전 50~60%)까지 부담하도록 규정이 바뀐 영향도 컸다.

◇호흡기·피부 질환… 이번 설엔 응급실 대신 비대면 진료

올해 설 연휴 기간(1월 25~29일) 응급실 이용 현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경증·비응급 환자’ 감소다. 작년 설 연휴엔 전체 응급실 환자(하루 평균 3만6996명) 중 63.9%(2만3647명)가 경증·비응급 환자였다. 이 비율이 작년 추석엔 58.5%, 올해 설엔 53.5%까지 줄었다. 1년 만에 10%포인트 넘게 줄어든 것이다. 경증 환자를 포함한 전체 응급실 환자 수도 하루 평균 2만6240명으로, 작년 설 대비 1만756명(29.1%) 줄었다.

작년 9월부터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면 진료비의 90%를 부담하도록 규정이 바뀐 영향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가령 경증 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는 경우 내야 할 진료비는 13만원에서 22만원으로 올랐다.

이번 설 연휴에는 경증 환자들이 갈 수 있는 동네 병원들도 문을 많이 열었다. 정부가 이번 연휴 기간 문 여는 병의원에 수가(건강보험공단이 주는 돈)를 최대 60% 추가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번 설 연휴 문을 연 병원은 하루 평균 병의원 1만4619곳으로, 작년 설(3643곳), 작년 추석(8743곳)보다 훨씬 많았다. 경기 오산에 사는 회사원 A(37)씨는 “연휴 내내 고열·감기로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더 아픈 사람도 많은데 응급실 가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마침 동네 의원이 문을 열어 진료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응급실 의료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의료 현장을 지켰다. 전국 응급실 413곳 중 412곳이 24시간 운영됐다. 김수진 고대안암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경증 환자는 확연히 줄었는데, 서울 동북권역에 원래 많은 중증·고령 환자는 평소처럼 왔다”고 했다.

설 연휴 기간 응급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 데는 대형 병원이 의정 사태 직후 거의 반 토막 났던 입원 환자 수용 능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점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응급실에선 중환자 병상 등 입원 병상이 충분히 확보돼야 중증 응급 환자를 받을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의정 사태 직후였던 작년 3월 첫째 주 서울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의 하루 평균 입원 환자 수는 4582명으로, 의정 갈등 전(7893명)보다 41.9% 줄었다. 하지만 지난달 넷째 주(20~23일) 입원 환자 수는 5689명으로, 10개월 만에 24.2% 늘었다.

‘비대면 진료 활성화’도 한 이유로 꼽힌다. 국내 비대면 진료 업체 ‘나만의닥터’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 하루 평균 비대면 진료 건수는 작년 설 대비 114% 늘었다. 진료 항목은 호흡기 질환(24%), 소아 질환(14%), 피부 질환(9%) 등 순이었다. 비대면 진료 수요는 의정 갈등 이후 늘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 이탈 당시인 작년 2월 14만7762건이었던 ‘병의원급 비대면 진료’는 비대면 진료가 전면 확대된 작년 4월 19만3849건으로 약 31% 늘었다. 이후 매달 약 18만~19만 건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응급 의료 현장에선 의료 인력 부족과 번아웃(극도의 피로) 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지 1년 가까이 되면서 지방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진의 체력·정신적 부담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실은 전문의 부족으로 이달부터 다시 야간 진료를 축소한다. 응급실 내원 환자 중 경증 환자 비율도 과거에 비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연휴 기간 불미스러운 사건·사고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대다수 응급실이 부족한 인력으로 간신히 응급 의료 체계를 유지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