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오후 8시 30분 서울 구로구의 소아 청소년 전문 병원인 우리아이들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소아 환자가 15명에 달했다. 대개 38도 미만 미열이나 두드러기 등으로 찾아온 경증 환자들이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 두 살 딸을 데려온 김모(36·서울 영등포구)씨는 오후 9시에 도착했다. 김씨는 “맞벌이라 퇴근 후 아이를 동네 의원에 데리고 갈 수 없다”며 “밤뿐 아니라 새벽에도 찾아갈 수 있는 병의원이 있다면 부모 입장에서 정말 고마울 것”이라고 했다.
우리아이들병원은 다음 달부터는 연중무휴로 경증·중등증(경증과 중증 사이) 환자를 24시간 진료하는 ‘79(친구) 클리닉’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9일 밝혔다. 같은 의료 재단인 성북우리아이들병원도 24시간 진료를 할 예정이다. 전국을 통틀어 소아 청소년 전문 병원급에서 이 같은 시도는 처음이다.
현재 우리아이들병원과 같은 전국 107곳의 정부 지정 야간·휴일 진료 기관인 ‘달빛어린이병원’의 진료 시간은 평일 기준 최대 자정까지다. 이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 자정 전후나 새벽 시간대 아이가 아프면 119를 불러야 할지, 아니면 다음 날 아침 병원이 문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고민이 많다. 우리아이들병원은 이런 진료 사각지대를 메워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은 “어린 자녀가 아프면 꼭 ‘응급’이 아니더라도 부모는 ‘긴급’ 상황에 처한다”며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부모가 친구처럼 의지할 수 있는 진료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현재 우리아이들병원은 구로 본원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16명을 포함해 전문의 18명이, 성북 병원에 소아청소년과와 정신건강의학과 등 총 18명이 각각 근무 중이다. 병원 측은 24시간 진료를 위해 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총 8명의 의사를 추가 채용했다. 두 병원에 최대 4명씩 배치될 예정이다.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등도 추가로 구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새벽에 찾아온 소아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면, 연계된 대형 병원 응급실로 빠른 시간 내 전원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캐나다 등에도 이런 시스템이 정착해 있다. 미국에서는 복통, 구토 등 경증 환자는 응급실 대신 긴급 진료 센터(Urgent care clinic)를 찾는다. 이 덕에 응급실 의료진은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9월부터 경증 환자의 응급실 진료비 본인 부담률이 90%까지 오르면서, 응급실을 찾지 않더라도 야간과 휴일에 방문할 수 있는 의료 기관을 확대할 필요성이 커졌다.
한편 서울 강남구보건소도 일반 연령 환자를 대상으로 운영 시간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긴급 진료 클리닉’ 개소를 준비 중이다. 동네 병의원이 문을 닫는 시간에도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주치의로 유명한 전 삼성의료원장 이종철 강남구보건소장의 숙원 사업이다. 올해 초 문을 열 계획이었으나 전문의 구하기가 어려워 올 하반기 개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