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여자의 노래를 들으면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1977년 천경자 화백이 좋아하는 가수로 이미자(82)를 꼽으며 한 말이다. 내년 데뷔 65주년을 맞는 이미자는 ‘엘레지(elegy·애가)의 여왕’답게 슬픈 노래가 많다. 그의 애가를 들으며 6·25 전후 눈물을, 한강의 기적을 위해 흘린 땀을 위로받았다는 경험담도 많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이미자는 “공연 때 신나는 노래가 없어 관객에게 미안하다. 젊...

1955년 초가을, 고등학생 정진석은 학교에서 평행봉 운동을 하다 미끄러져 다리를 다쳤다. 왼쪽 허벅지 대퇴부에 급성 관절염이 왔다. 의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열여섯 살 한창 꿈 많을 나이에 정진석은 학업을 중단하고 앓아 누워야 했다. ‘이대로 스무 살도 못 사는 짧은 생을 마쳐야 한단 말인가?’ 뒤칠 수도 없는 몸으로 울며 고뇌하는 밤들이 계속됐다. ◇아버지가 깎아준 지팡이 40대 후반이던 그의 아버지는 병든...

“저는 금년에 일곱 살 된 하춘화입니다.” 1962년 하춘화의 독집 음반 ‘당년 칠세 소녀 가수 하춘화 가요 앨범’에서 들려온 이 앙증맞은 인사말이 대중을 발칵 뒤집어 놨다. 국내 최연소 정식 음반 데뷔 기록. “1961년 첫 공연을 기점으론 올해 데뷔 62주년”이라는 하춘화(68)는 ‘어린이 가수’란 말을 국내에 처음 유행시켰다. 최근 자신처럼 여섯 살 때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조카 손녀 하유나(12)양과 듀엣곡 ‘엄마와 딸...

‘용의 눈물’(1996~1998·159부작), ‘태조 왕건’(2000~2002·200부작), ‘야인시대’(2002~2003·124부작)는 국내 대하 드라마 ‘3대작’으로 꼽힌다. 방대한 분량에 최고 시청률이 40~60%에 달했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관심법으로 보았다’ ‘사딸라’ 같은 명대사와 드라마 ‘짤’들이 수십 년 지난 지금까지 유행한다. 세 작품 극본은 한 사람 손에서 탄생했다. 학력이라고는 ‘국민학교’ 졸...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 2층. 작년 세상을 떠난 고(故) 이어령 선생이 지내던 서재 창가엔 앙상해진 덩굴식물이 남아 있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책 6400여 권, 컴퓨터 7대를 비롯한 서재를 그대로 보존했지만, 잎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고인의 아내 강인숙(90) 영인문학관 관장은 “이어령 선생이 기르던 풀이다. 저게 사는 걸 보면서 ‘마지막 잎새’처럼 여겼는데, 많이 떨어졌다”며 생각에 잠겼다. “특히 올해 ...

산부인과 진료 도구를 다시 손에 쥔 이길여(91) 가천대 총장은 65년 전 인천 ‘용동 큰 우물(현 동인천역)’ 인근에서 처음 환자를 보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 집(산부인과)은 보증금도 안 받는 데다, 자궁암 검진도 무료로 해주고, 서울대 나온 여의사가 시집도 안 가고(웃음)…독특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 환자가 구름처럼 몰려들었죠.” 대학 축제 때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춰 유튜브 조회 100만회를 기록하고...
은사(恩師) 생전 21년, 입적(入寂) 후 30년 시봉(侍奉)-.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圓澤·79) 스님에게 ‘보물 1호’는 은사인 성철(性澈·1912~1993) 스님이다. 1967년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1972년 출가한 원택 스님은 불교계의 유명한 ‘효(孝)상좌(제자)’다. 성철 스님의 법문과 어록, 저술을 출판하고 학술 대회를 개최하는 등 스승을 현양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왔다. 최근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서...

경기도 분당 남진(77)의 자택 거실 벽면에는 세 장의 금빛 디스크가 걸려 있다. 그가 1971~1973년 3년 연속 차지했던 ‘MBC 10대 가수 청백전(10대 가수 가요제 전신)’ 가수왕 상패. 그가 이 상패를 두고 벌인 나훈아와의 경쟁은 1970년대 한국 대중가요사에 활력을 불어넣은 ‘보물’이었다. “수백억을 들여도 결코 만들 수 없는 관계가 자동으로 주어졌으니 훈아와 나, 우린 참 운이 좋았죠. DJ(김대중)와 YS(김...

낡고 빛바랜 종이 뭉치 속엔 당돌했던 한 소녀가 있었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 인근에서 만난 문정희(76) 시인은 비닐장갑을 낀 채로, 포장지에서 학창 시절 습작 노트를 꺼내 보였다. 장롱 속에 60년 넘게 보관했다는 뭉치에는 소설과 희곡 원고지 2000여 장, 단상을 적은 대학 노트 5권 등이 섞여 있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에게서 삶의 이치를 배운다” 같은 세계와 생명에 대한 소녀의 고민으로 가득한 글들....

1982년 11월 20일 오전 전두환 대통령이 독립기념관 건립 후보지였던 충남 천원군(현 천안시) 목천면을 방문했다. 국민 성금이 모여들고 여러 도(道)가 유치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찾은 이곳은 순식간에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다. 당시 대통령에게 터에 대해 설명한 인물은 건립추진위 기획위원으로서 이 땅을 찾아낸 건축가 김원(80)이었다. 1일 서울 대학로 사무실에서 만난 김원은 “풍수로 보면 멀리 늘어선 산...

비가 내리던 지난 24일 파주 문발동의 파주출판도시. 나지막한 건물 사이로 책을 품에 안은 젊은 출판인들이 오고 갔다. 습기 때문에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고서들을 마주한 곳은 ‘열화당 책박물관’. 파주출판도시 기획·설립을 주도한 출판인 이기웅(83) 열화당 대표를 이곳에서 만났다. 그는 출판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 대표는 ‘운전수’처럼 살았다. 출판도시의 운전수였고, 평생 출판인의 길을...

‘대한민국 전산학 박사 1호’의 서재는 의외로 평범했다. 지난 18일 문송천(71) KAIST 경영공학부 명예교수의 경기 과천 자택에 들어서면서 골동품 같은 구형 컴퓨터와 온갖 부품으로 가득한 작은 박물관을 상상했다. 그러나 책상 위에 노트북 한 대가 있고 책꽂이에 책이 꽂혀 있을 뿐이었다. 아파트에서 흔히 보는 ‘서재방’ 풍경이었다. 다소 실망하는 기색이 드러났는지 문 교수는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IT(정보 기술...

1977년 11월 27일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 파나마로 날아간 스물일곱 홍수환은 링 한편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상대는 그보다 열 살 어린 헥토르 카라스키야. 11전 11KO승을 자랑하며 ‘지옥에서 온 악마’로 불리던 파나마의 신예 복서였다. 3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밴텀급 챔피언 자리에 오른 홍수환으로서는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면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2체급을 석권할 수 있는 절...

“이렇게 될 때까지 어떻게 참은 겁니까?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의사는 참 딱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눈앞 사진 속 왼쪽 정강이뼈에 금이 가 있었다. 1999년, 당시 서른두 살의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무용수 강수진은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 무용의 오스카’라는 ‘브누아 드 라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은 참이었다. 그런데 수상 뒤 첫 공연 ‘지젤’을 연습하던 중, 도저히 참을 수...

올해는 대한민국 수립 75주년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보물(寶物)을 발굴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연극배우 손숙, 영화인 신영균, 만화가 이현세, 시인 신달자, 김장환 목사, 가수 김연자, 화가 박서보, 소설가 이문열,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양정...

①5·10 총선거 완수 감사장(1948) “귀하는 건국창업의 기반인 단기 4281년(1948년) 5월 10일 총선거사업을 획기적으로 추진완수하여 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함에 절대한 공헌을 하였기에 충심으로 감사의 의를 표함.” 상단에 작게 태극기가 그려진 이승만 대통령의 감사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받는 이는 강원도 홍천에서 선거위원으로 활동했던 권항식씨. 손자인 인천광역시 독자 권문혁(63)씨가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간직해 왔다....

“다시는 일본한테 지지 마래이.” 1994년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삼성전자 황창규 기술개발담당 이사에게 말했다. 세계 최초로 256메가D램 반도체를 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개발 책임자로서 직원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대받아 조찬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악수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 양복 겉주머니에 꽂아둔 만년필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대통령이 경호 인력을 뒤로 물린 채 손수 만년필을 주워 가슴에 꽂...

‘청바지 가수도 할 말 있다’. 1974년 9월 28일 자 조선일보 지면 ‘젊은이의 발언’에는 위 제목으로 가수 양희은(71)이 쓴 기고글이 실렸다. ‘청바지’와 ‘통기타’를 저항과 자유의 상징처럼 여기던 청년문화를 ‘겉멋’이라 비판했던 당시 세간 반응에 “생활이 담긴 진실한 이야기를 퇴폐로 모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박한 글이었다. 그가 청바지·청남방 차림으로 통기타를 옆에 세운 채 찍은 1971년 데뷔 음반 ‘양희은의...

“운동복이라도 입으면 모를까 지금 자세가 제대로 나올지….” 지난달 27일 부산 사직동 부산광역시체육회 국제대회기념전시관에서 만난 양정모(70)가 레슬링 기본 자세를 취해 달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재킷을 벗으며 말했다. 멋쩍은 듯 웃었지만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하자 눈빛이 달라졌다. 일흔 나이에도 탄탄한 팔뚝과 떡 벌어진 어깨가 여전했다. 양정모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자유형 62㎏급)에서 우승해 대한민국의 ...

환갑을 앞두고 시작된 열애(熱愛)였다. 김동호(86) 부산국제영화제(BIFF) 초대 집행위원장이 BIFF라는 연인을 만난 날은 1995년 8월 18일.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커피숍으로 김지석 당시 부산예전 교수, 전양준 영화평론가, 이용관 경성대 교수 등이 찾아왔다. 셋은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만들고 싶다,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영화진흥공사 사장, 예술의전당 사장, 문화부 차관을 지낸 그의 인맥과 경륜이 필요하다...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문열(75)의 이름은 한국 전쟁이란 비극에서 탄생했다. 본명은 ‘열(烈)’. 6·25 전쟁 때 홀로 월북한 아버지가 ‘열렬한 사회주의 투사가 돼라’며 지은 이름이다. 어머니와 5남매는 ‘빨갱이 가족’이라는 딱지를 오랫동안 뗄 수 없었다. 1979년 등단하며 이름 앞에 ‘문(文)’자를 추가한 필명을 쓴 이유다. 게다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과 관련해 ‘홍위병을 돌아보며’란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2...

올해는 대한민국 수립 75주년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보물(寶物)을 발굴한다. 평범해 보이는 물건에도 개인의 기억과 현대사의 한 장면이 깃들어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연극배우 손숙, 영화인 신영균, 만화가 이현세, 시인 신달자, 김장환 목사, 가수 김연자에 이어 박서보 화가의 ‘보물’ 이야기를 들어본다. ...

올해는 대한민국 수립 75주년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보물(寶物)을 발굴한다. 평범해 보이는 물건에도 개인의 기억과 현대사의 한 장면이 깃들어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연극배우 손숙, 영화인 신영균, 만화가 이현세, 시인 신달자, 김장환 목사에 이어 가수 김연자의 ‘보물’ 이야기를 들어본다. 하얀색 치마저고...

올해는 대한민국 수립 75주년이다. 이 기간 신생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보물(寶物)을 발굴한다. 평범해 보이는 물건에도 개인의 기억과 현대사의 한 장면이 깃들어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연극배우 손숙, 영화인 신영균, 만화가 이현세, 시인 신달자에 이어 김장환 목사의 ‘보물’ 이야기를 들어본다. 극동방송 이사장...

올해는 대한민국 수립 75주년이다. 이 기간 신생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보물(寶物)을 발굴한다. 평범해 보이는 물건에도 개인의 기억과 현대사의 한 장면이 깃들어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연극배우 손숙, 영화인 신영균, 만화가 이현세에 이어 시인 신달자의 ‘보물’ 이야기를 들어본다. 신달자(80)는 최근 17번째...

올해는 대한민국 수립 75주년이다. 이 기간 신생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보물(寶物)을 발굴한다. 평범해 보이는 물건에도 개인의 기억과 현대사의 한 장면이 깃들어 있다. 올해 ‘공포의 외인구단’ 발표 40주년을 맞은 만화가 이현세가 ‘보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시절의 젊음은 폭발 직전이었습니다. 까치라는 반항아가 등장하자 청춘은 둑...

“이것이 말로만 듣던 전설의 조선 탑건.” “톰 크루즈의 탑건보다 20년 이상 앞섰네요. 1964년에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가 나오다니.”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는 영화 ‘빨간 마후라’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특수촬영 기법이 없던 시절, ‘빨간 마후라’는 공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실제 F-86 전투기(1940년대 미 전투기)를 띄우고 기체에 카메라를 달아 촬영하는 등 한국 최초로 공중전을 촬영한 블록버...

올해는 대한민국 수립 75주년이다. 이 기간 신생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보물(寶物)을 발굴한다. 평범해 보이는 물건에도 개인의 기억과 현대사의 한 장면이 깃들어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이어 ‘연극계 대모(代母)’라 불리는 배우 손숙의 ‘보물’을 들여다본다. “엄마, 나 저것 하나만 들고 갈게요!” 1965년...

원로 철학자 김형석(103) 연세대 명예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책상에 놓인 낡은 국어대사전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김 교수가 일흔 살 무렵인 1991년 구입해 30년 넘게 써 온 금성출판사 국어대사전이다. 광복 이후 비로소 국어사전을 볼 수 있었고 이후 여러 차례 사전을 바꿔 가며 사용해 오던 것을, 당시 나온 최고 수준 사전이라 여겨 지금껏 바꾸지 않고 쓰고 있다고 했다 ◇백살 넘어서도 늘 찾아보는 국어사전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