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들로 꽉 차 있는 퍼블리 콘텐츠 팀을 이끄는 박소리님은 1985년생이다. 그리고 2015년에 태어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폭풍우 속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배에 탄 것 같은 파란만장 스타트업 라이프와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함을 유지하는 재능이 있다.

소리님이 얼마 전 ‘커리어 대작전’이라는 신간을 소개하는 글을 썼다. 한국과 일본에서 30년 이상 광고 크리에이티브 커리어를 쌓은 여성 프로페셔널 두 명이 후배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과 조언을 묶은 책이다. 소리님은 소개글 중 자신의 커리어 10년을 돌아보며 분기점이 된 한 대목을 회고한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직장에서 남녀 차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열심히 하다, 출산 후 복직을 하고 나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의 성과가 더 좋았음에도 다른 남성 직원이 더 간절하기에 승진자 의사 결정에서 누락되었다는 것을 상사로부터 듣고 나니, ‘나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커리어가 끝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두려움 말이다.

이후 회사를 옮겼고, 달라진 것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제안을 받을 때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군’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네, 해보겠습니다”라고 수락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점이라 한다.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에 임하는 사람이 보이는 평온한 태도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

‘나의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불안감을 느껴보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랄까. 그럴 때일수록 나보다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큰 용기를 얻게 되는 경험이다. 초조한 마음을 잠재우고 다시 신발끈을 단단히 묶게 만드는 목소리들을 소개한다.

‘부디 계속해주세요’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으로 한국과 일본의 젊은 문화인 10명이 나눈 대담집이다. 배우 겸 감독 문소리는 “배우 자신이 ‘할 수 있을까?’라고 망설이는 순간 가능성은 절반 이하로 떨어져버려요”라면서 자기 자신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들을 믿을 것을 주문한다.

‘출근길의 주문’에서 이다혜 작가는 쓰기와 말하기의 힘을 이야기한다. “당신이 쓰고 말해야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주변에 모인다. 사고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이다.” 부지런히 쓰고 말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누군가에게 내가 선택해 온 길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 먼저 가 본 길로부터 도움을 얻었듯.

‘커리어 대작전’에서 일본 광고회사 덴쓰의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로 일하는 오카무라 마사코는 코코 샤넬의 말을 인용한다. “가로막힌 벽이 문으로 바뀌길 기대하며 그 벽을 두드리느라 세월을 낭비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벽보다 더 많은 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를 잃지 않는다.

현재 진행형인 변화의 물결 안에 있으면 역설적으로 속도감을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지나온 길을 관찰해보면, 놀랍도록 세상이 변해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제안을 수락하다 보니 “일이 많아지고, 역할도 커져서 아마 당분간은 계속 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라고 소리님은 적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이처럼 계속해서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힘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