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얼마 전 방송에 나와 자신의 재판과 관련해 “(대통령에 당선되면 형사재판이) 정지된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했다. 이른바 ‘헌법 84조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으로 불리는 이 조항은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통상 소추는 기소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재판까지 포함된다고 보는 게 “다수설”이라며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받고 있는 재판도 정지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대표 말은 맞는 것인가? 아니다. 아직 단정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무리다. 대통령이 재직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 것은 명확하지만 재직 전 기소돼 받고 있던 재판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어느 법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소추란 기소를 뜻해서 재직 전 기소된 재판은 진행해야 한다”는 견해와 “불소추 특권 취지가 대통령 국정 운영의 안정에 있는 만큼 재직 전 기소된 재판도 임기 중엔 중단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다수가 아닌 상황”이라고 했다.
1948년 헌법 제정 당시에도 이 문제를 토론한 흔적이 없다. 형사 재판받는 피고인이 대선에 출마해 당선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결과적으로 입법 미비 상태가 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합의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자칫하면 큰 사회적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재판 진행 여부 누가 판단하나
관심은 그런 상황이 생겼을 때 그 논란에 대한 판단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로 쏠릴 수밖에 없다. 헌법 84조 논란은 기본적으로 헌법 해석에 관한 문제다. 그러면 헌법재판소가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해석의 문제가 생겨도 관련 사건이 없으면 직권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런 절차를 규정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개헌 논의가 있었을 때 그런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을 헌재 차원에서 검토했지만 유야무야됐다.
그렇다면 ‘누군가 헌재에 헌법소원을 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헌법소원은 공권력 남용 등으로 국민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이를 구제해 달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법원이 이 대표 재판을 진행하거나 중단한다고 해도 일반인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어 그대로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 각하란 소송 요건이 안 되는 사건을 그대로 종결하는 것이다. 헌재가 이 논란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판단 주체가 법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는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2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나머지 사건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각 재판부가 어떤 형태로든 재판을 계속할지 말지를 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행 여부 판단은 재판부 전권
다만 그 판단이 어떤 ‘결정’ 형태로 나올 수는 없다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재판 정지는 형사소송법(306조)에 그 사유가 규정돼 있다. ‘피고인이 질병으로 인해 출석할 수 없을 때’ 등이다. 법관 기피 신청 등도 정지 사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경우 재판을 정지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형태로 재판을 정지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을 그냥 진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재판을 진행하지 않을 경우엔 재판부가 재판 기일을 안 잡거나, 재판 기일을 적정한 시점에 잡겠다고 ‘추후 지정’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검찰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사실상 재판 진행을 안 하는 결정이지만 법적인 의미의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이 이에 대해 항고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검찰이 재판 기일을 잡아달라고 요구해도 재판부가 여기에 답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기일 지정은 재판부의 전권이고 재량이라는 것이다. 법원 재판에 대해선 헌법소원도 금지돼 있어 헌재에 판단을 구할 수도 없다.
◇“대법원이 입장 표명해야 할 수도”
만약 법원에서 재판 진행 여부를 정한다면 1심 재판부보다는 대법원이 먼저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가 오는 26일로 예정돼 있어 당장 3심 선고 여부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이 대표가 원하는 대로 5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이 대표의 출마 자격과 직결되는 재판이다. 이 대표는 이 사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 판결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고 대선 출마도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3심 선고가 언제 나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이 될 수밖에 없고, 대법원이 가장 먼저 재판 진행 여부를 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이 사안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하급심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하급심이 반드시 대법원 판단을 따라야 하느냐는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대법원 판단도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과 하급심이 다르게 판단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면 혼란은 더 가중될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을 경우 대법원이 아무런 입장 표명 없이 그냥 넘길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만약 대법원이 입장 표명을 하면 그것이 어느 쪽이든 정치적인 결정으로 비칠 수밖에 없고, 여야 한쪽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할 것이다. 나라가 두쪽으로 갈라져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사법부 입장에선 중대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한 전직 대법관은 “그 혼란을 막으려면 이 대표 출마 전에 선거법 위반 사건만이라도 확정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15대 대선 전 ‘DJ 비자금’ 수사 유보 결정, 검찰에 큰 부담으로 남아
과거 검찰도 대선 직전 정치적인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1997년 15대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비자금 670억원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때였다.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고 신한국당은 김 후보를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고발 닷새 뒤 김태정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사건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수사할 경우 극심한 국론 분열, 국가 전체의 대혼란이 분명하다고 보여지고 대선 전에 수사를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우리 법에 검찰의 정치적 판단을 용인하는 내용은 없다. 검사는 범죄 혐의가 있으면 수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정치적 충격을 고려해 수사 유보를 결정한 것이다. 김태정 전 총장은 1999년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 유보 결정에 대해 “당시 DJ 비자금을 수사하면 호남에서 민란이 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1년 회고록에서 자신이 당시 김 총장에게 수사 유보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치적인 결정이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 결정은 검찰이 중립을 지키기 위해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사에 정치 판단이 개입됐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검찰에 부담으로 남았다. 실제 유보 결정 이후 김대중 정권이 출범했고, 이 사건은 무혐의 처분됐다. 김 전 총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유임된 뒤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했지만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장관직에서 해임되고 구속되는 비운을 겪었다.
만약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대선에 출마하고 재판 정지 여부가 쟁점이 되면 대법원도 1997년의 검찰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사법부에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