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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 피할 수 없는 찬 바람이 있다. 수능 한파다. 비록 차갑지만 수능 이후를 그리는 청춘(靑春)들의 온기가 남아 있는 바람. 많은 이가 그 바람을 한 번쯤 직접 맞아봤을 테다. 그런데 올해 온도는 예년과 다른 듯하다. 한 구인·구직 업체가 수험생을 대상으로 수능 이후 계획을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50% 안팎이 아르바이트를 꼽았다고 한다. 10여 년 전 같은 설문에선 30% 정도였던 수치가 꾸준히 오른 결과다. 올해 2위와 3위는 여행(9.8%)과 휴식(9.1%). 구인·구직 업체가 설문을 실시한 주체란 점을 감안해도, 수험생들이 여행과 휴식 대신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경향이 어느 정도 드러난 셈이다. 수능 한파 직후 찾아온 온기를 만끽하기보다는, 또 다른 추위 속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왜 그런 걸까. 물가가 오르며 경제적 부담이 커졌고, 필요한 물건을 직접 벌어서 사려는 변화도 있겠지만 ‘똑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 세대에게 일반화된 결과라고 본다. 과거 수능 이후 학업에서 해방되며 생긴 자유를 당구장·PC방·노래방에서 소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이제는 그 시간마저도 알차게 보내고자 한단 것이다. 책 ‘2000년생이 온다’는 2000년대 들어 태어난 이들을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라고 표현한다.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덕분에, 수많은 정보를 비교하며 실패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내리는 데 익숙하단 뜻이다. 그 과정에서 청춘의 푸르름이 점차 옅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비슷한 신호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읽는다. 올해 수능 응시생 면면만 봐도 그렇다. 의대 증원 정책 이후 처음 치러진 수능에는 재수 이상 응시생이 21년 만에 가장 많았다. 학원가에선 “(의사) 면허만 취득하면 높은 수준의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같은 문구를 올 초부터 내걸며 ‘의대 마케팅’에 사활을 걸었고, 고액 프리미엄 사교육도 덩달아 늘었다. 삶의 최저치를 높일 수 있단 말에 대학생은 물론 사회 곳곳을 누비던 초년생들도 대거 몰렸다.

물론 무작정 젊은 세대에게 도전을 권유하며 ‘아프니까 청춘’ 같은 구호가 먹히던 시대는 지났다. 사회 전반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며, 노력이 성공을 담보하지 못하게 된 영향이다. 입시, 취업, 내 집 마련, 결혼, 출산… 위 세대가 자연스레 지나쳤던 삶의 길목을 지금 세대는 따라가기 버거워한다. 대다수 대학이 전문직·공무원·대기업 직원 양성소로 변한 지 오래된 것도 이 세대가 체감하는 삶의 온도가 팍팍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 어느 때보다 추웠을 하루를 보낸 뒤, 다시 추위 속으로 걸어가기로 한 수험생들에게 이 말을 권하고 싶다. 김연수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 속 한 구절이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미래의 우리는 지금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기 때문에, 과거에 기반해 선택하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래를 상상해야 한단 말이다. 부디, 하루쯤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