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한 식당에 다녀왔다. 좌석이 오픈 주방을 중심으로 니은(ㄴ) 모양으로 한 번 꺾인 바(bar) 형태였다. 셰프가 가운데 서서 음식 설명을 한 뒤 큰 접시에 담긴 것을 조금씩 덜어 개인 접시에 올려줬다. 천천히 먹고 싶어도 다음 음식이 나오는 타이밍 때문에 옆 자리 사람들과 속도를 맞춰 먹어야 하는 분위기였다. 맛이 좋아서 접시는 금방 비워졌다.
음식도 음식인데 자리 구조상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저녁 5시 반부터 1시간 반 동안 두 명씩 일곱 팀, 총 14명이 함께 밥을 먹었다. 보통 다른 식당에선 옆 테이블에서 누가 밥을 먹고 있나 굳이 들여다볼 일이 없기에, 함께 밥 먹고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와 성별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 경험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바로 옆 자리 커플은 기념일인지 꽃다발이 있었고, 대각선 건너편 커플은 술을 좋아하는지 빈 병이 빠르게 늘어갔다. 고급 단체 급식 같은 느낌이었다.
이 식당은 옛 문헌에 나온 조리법을 발굴해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식을 내놓는 곳이었다. 먹으면서도 부모님 생각이 조건반사적으로 났다. 어르신 입맛에 맞는 곳이지만 이날 함께 식사한 이들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모두 20~30대로 보였다. 블로그에 올라온 과거 후기들을 보면 중장년층 손님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식당의 셰프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출연해 인기를 끌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캐치 테이블’이라는 앱으로만 예약을 받는 이 식당은 예약이 열리자마자 몇 분 만에 한 달 치 예약이 마감된다고 한다. 프로그램에 나온 다른 셰프들의 식당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앱 사용이 서툴어도 예약이 널널했을 땐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손가락의 기민한 움직임까지 예약 조건에 추가된 것이다. 어르신들에겐 이런 변화가 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아마도 프로그램의 반사이익을 누릴 한동안은 이 식당이 주로 젊은 손님들로만 채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디지털화는 불가피한 것이다. 캐치 테이블 앱이 탄생한 스토리를 들어보니 주점을 운영하던 어머니가 재고 파악과 예약 관리에 애를 먹자 도움을 드리고자 처음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식당 운영하는 지인에게 들어보니 앱을 쓰면 테이블 숫자만큼만 예약을 받아 초과 예약의 염려가 없고, 앱 자체에서 예약금을 결제토록 돼 있어 노쇼(예약 부도)가 방지돼 이제는 전화 예약조차 받지 않는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사실 선착순 만큼 평등한 예약 방식도 없다. 예약을 받을 때 연령별로 테이블 수에 차등을 두어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손가락이 느려서, 앱을 다룰 줄 몰라서 원하는 경험에서 번번이 배제되는 것은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디지털 허들’에 발목 잡혀 특정 연령층이 일상 곳곳에서 소외되고, 트렌드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이 흐름을 막을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누구나 그 허들에 걸리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훗날 그 허들에 걸리는 날, 가고 싶은 식당이 있어도 그곳에 내 자리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서글퍼진다. ‘캐치 테이블’에 실패한 나의 빈손을 한참 동안 바라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