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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4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5 공공기관 채용정보박람회'를 찾은 취업 준비생들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내일은 내일의 새로운 채용 공고가 뜬다고 믿었던 취업 준비생 A씨. 그런데 먹구름 잔뜩 낀 채용 한파에 공고가 안 뜨는 날도 있다. 지난주 최종 면접 뒤 합격자 발표 날, 5분마다 홈페이지를 확인했지만 결국 탈락. ‘070′으로 시작하는 스팸 전화도 혹시나 합격 전화일지 몰라 놓치지 않고 받는다. 웹툰 ‘취준생일기’ 속 내용인데, 수많은 취준생에게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느끼게 하며 멘털 관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문과생들에게 엄혹한 취업 한파다. 주요 대기업이 포진해 있는 유통업계마저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업계 상황을 물어보니 롯데그룹 식품 계열사는 작년 하반기 신규 직원을 채용했는데, 지원자가 역대 최대로 몰렸다고 한다. 해외 영업, 마케팅 등 직군에서 최종 합격자는 10명 내였지만 지원자는 2200여 명으로 경쟁률이 200대1을 넘어섰다. 신세계백화점은 작년 채용에서 전년 대비 지원자가 10% 증가했고, CJ올리브영은 지난해 기준 신입 공채 지원자 수가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었다고 했다.

문과생들은 AI, 코딩에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온갖 스펙을 쌓아도, 상향 평준화로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한 화장품 회사 인사 담당자는 “마케터 같은 경우는 대부분이 경영‧경제학부 출신 문과생들인데 그중에서도 코딩을 할 줄 알거나 생성형 AI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지원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하지만 입사한 뒤에는 업무를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무의미한 허들만 양산되는 셈이기도 하다.

수치로 보면 국가 재난급 수준이다. 얼마 전 구인배수 ‘0.28′이라는 수치가 고용노동부에서 발표됐다. 구직자 한 사람당 일자리가 1개도 아닌 0.28개라는 의미다. 외환 위기 직후인 1999년 1월 0.23 이후 2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옆 나라 일본은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도 구인배율이 0.42였는데. 우리는 이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어려워도 취업할 사람은 다 한다’는 말도 통하지 않는 데이터다. 특히 작년 339곳의 공공기관에서도 신규 채용 규모를 줄여 4년 만의 최저인 1만명대로 내려왔다.

설상가상 중소기업 파산은 최대로 늘어 기존 취업자들도 구직 시장에 참전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파산한 법인은 1940건으로 10년 사이 최대치다. 노인 일자리만 유일하게 늘어나는 추세라는 걸 감안하면, 전체 일자리 중 청년들이 지원할 수 있는 건 극히 소수다.

이런 상황 속 “2030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고 고립시켜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국회 다수 의석으로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의 당원 교육을 맡고 있는 박구용 교육연수원장이 한 말이다. 자기와 반대되는 정치 성향을 가진 청년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더 이상 더 말라비틀어질 수도 없는 청년들은 자기 계발하랴, 아르바이트하랴 바빠 이런 말에 분노는커녕 체념, 절망에 가까운 기분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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