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신림동 보안관’이라 부를 만했다. 미소가 아름다운 한 택배 청년 얘기다. 최근 택배 기사 체험을 하며 그를 알게 됐다. 매일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같은 동네, 같은 골목으로 출근한다. 같은 루트로 이동한다. 대개 온라인 쇼핑을 자주 하는 사람 집 앞은 택배 박스가 마를 날이 없어 ‘늘 가던 집’에 배송하는 경우도 많단다.
청년은 지난달 “택배 받는 분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보낸 이의 전화로 고독사한 노인을 발견했다. 그 뒤로 혼자 사는 것으로 보이는 노인 집 앞에 가스 요금 고지서가 쌓여 있거나, 현관 앞 자전거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매일 마주치는 우체부와 안부를 주고받고 혀 짧은 목소리로 “택배 차다. 안녕하때요” 하는 유치원생과도 반갑게 인사한다. 익숙한 청년이 계속 오다 보니 “누빔 점퍼 입는 그 골목집 어르신 잘 계시냐”며 이웃 안부를 대신 물어오는 동네 사람도 있단다.
몇 달 전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보다가 독거 노인에게 우유를 배달하며 안부를 확인한다는 비영리 법인을 발견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그 뒤로 매달 소액의 후원금을 보낸다.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금액. 문 앞에 우유가 쌓여 있으면 연락을 취해 어르신 건강을 확인한단다. 지난해 12월 기준 우유 17만2000여 개를 5600여 가구에 배달했다고.
귀하게 일궈온 삶을 아무도 모르게 마감하는 이가 없길 바란다. 매일 새벽 배달되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우유 한 팩은 위장의 허기뿐 아니라 정신적 허기 역시 달래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위로 말이다. “관공서나 지역 사회의 추천을 받아 65세 이상 대상자를 선정한다”는데, 지난해 서울에서는 서초구(151가구)에 가장 많았고 강남구(148가구)도 순위권이었다. 고독은 빈부를 가리지 않나 보다.
이웃 간의 관심이 성가시고 때에 따라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요즘이다. “김 영감 요즘 통 안 보여~” “장씨 아저씨 어디 아픈가?” 하며 이웃집 문을 두드리던 “똑, 똑” 소리는 사라졌고, 일각에서는 그 자리를 가정용 CCTV가 대체했다. 주로 자녀가 혼자 사는 어르신 집에 설치해 확인한다고. 그렇게라도 걱정해 주는 자녀 있는 게 복(福)인 세상이란다.
과거 이런 사건이 있었다. 다섯 살 남아가 집에서 사망했다. 엄마는 “애가 뛰어놀다 침대 모서리에 부딪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런데 아이 몸에 늘 멍이 들어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이웃 주민이 세 차례 학대 의심 신고를 하고, 아이를 만날 때마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정황을 기록했다. 이를 토대로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범인을 잡았다. 엄마의 동거남이었다.
때로는 반가운 관심이 있는 법이다. 수북한 고지서를 이상하게 여기는 택배 청년의 마음처럼, 현관 앞에 배달되는 우유처럼, 아이 몸의 멍을 지나치지 않는 이웃 주민의 눈길처럼. 굳이 말을 걸거나 인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괜찮음을 확인하면 곧 사라지는 의문 하나로 충분할 것이다. ‘잘 지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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