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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식당, 부녀가 마주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대학생 딸은 가난의 설움에 눈물을 터뜨린다. 말은 점점 모질게 변한다. 아버지는 상경한 딸을 만나기 위해 제주에서 먼 길을 왔지만, 딸의 척박한 현실만을 본다. 떠나야 하는 시간, 버스 정류장. 딸은 아버지를 실은 버스가 떠나자 한 손을 흔들며 화해의 신호를 보낸다. 아버지는 두 손을 크게 흔들며 그제야 웃는다. 그가 바라본 버스 정류장엔 20년 전의 딸이 서 있다. 아버지의 눈에 딸의 모습은 대학생이 아닌 어린 시절에 멈춰 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이다. 비영어권 글로벌 1위에 오르며 순항 중인 만큼, 어느 자리에서든 화제 거리다. 관람평이 이처럼 사람마다 다른 경우도 흔치 않은 듯하다. 대한민국의 80년 역사와 4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관전 포인트를 찾는다. 부모에게 모진 말을 내뱉는 자식을 보며 ‘거울 치료’를 받는가 하면, 처음 자식을 키워 서툴렀던 ‘육아 후일담’을 몇 년이 지나 새삼 꺼내놓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다가 오랜만에 부모와 자식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각자의 가족 이야기를 대화에서 꺼낸다는 것. 부모에게 잘못한 일, 아이에게 했던 실수, 때론 부끄럽고 민망한 이야기들... 공적인 대화에서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결혼과 출산 유무를 묻고, 자녀의 나이를 물어보는 것. 더 나아가면 자녀의 진학과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이 공식에서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부끄러움의 서사는 설 자리가 없다. 공적인 자리에서 가족 이야기는 피상적인 대화에 머무르며, 길게 늘어놓아선 안 될 존재로 여겨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출생률, 이혼율과 같은 통계를 통해 겉핥기 식으로 가족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야기한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가족의 이야기는 개인의 몫이 된다. 나라 안팎으로 우리의 내일을 위태롭게 만드는 변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남의 가족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1인 가구, 이혼 증가와 같은 물리적 단절을 넘어 한국 사회 곳곳에서 가족 간 거리가 점차 멀어지는 현상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 업체는 한국인의 65% 안팎이 가족과 1시간도 채 대화하지 않으며, 떨어져 사는 이들의 경우 이 비율이 90%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가족과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꺼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제목은 ‘수고 많았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제목처럼 드라마엔 세대를 넘어 고된 시간들이 이어진다. 가난의 대물림은 쉽게 끊어지지 않으며 ‘개천에서 난 용’은 쉽게 날아오르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공감이 됐던 건 가족에게 진심의 감사 대신 모진 말을 건네는 대목이다. 가족에게 ‘수고 많았다’고 말하는 대신 가슴을 후비는 투정이나 푸념을 하는 경우 말이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이유로 부모에게 모진 말을 뱉고, 작은 화해의 손짓을 건넸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오늘은 집에 전화를 걸더라도, 말부터 바꿔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