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전남 완도에 간 일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길마다 바글바글 모여 있을 거란 상상을 하고 시내로 들어섰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노인은커녕, 사람이 아예 없었다. 깨진 낡은 간판과 반쯤 무너진 건물, 사이사이 걸려 있는 직업 소개소의 현수막. 사람 없는 마을에 붙어 있는 ‘외국인 근로자 모집’ 문구가 묘하게 느껴졌다. 이곳의 고령 인구 비율은 국내 평균의 2배 가까운 38%로, 사실상 외국인 노동력이 완도를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농어촌의 무너져가는 인구 구조를 실감했다.
얼마 전, 미국 정부가 전남 신안의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강제 노동 상품’으로 분류해 수입을 금지했다. 이와 별개로 한국 내 외국인 계절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 전반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물론 이 조치들은 트럼프 정부가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까지 관심을 가져서가 아니다. 자국 농어촌 산업을 보호하고 통상 협의에서 우위를 갖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고령화된 지방 도시의 실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어느 통상 이슈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경고다.
한국에서 취업 비자를 받고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는다. 이 제도는 일터를 바꿀 자유를 제한한다. 원칙적으로는 고용주가 바뀌면 새로운 고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산재가 반복되는 공장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면 참아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도 없이 지정된 곳에서 오래 일할 수밖에 없다. 일터 이동의 자유가 사실상 봉쇄되면 원치 않는 노동과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 강제 노동을 하게 된다.
최근까지도 일부 염전이나 원양 어선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일이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중 약 60%가 언어 폭력이나 부당한 처우를 경험했다. 월급 미지급은 기본이고, 감금과 도주 방지용 GPS를 부착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이들은 이미 한국 사회의 일부다. 시간이 지나면 한국어를 익히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세금을 낸다. 그런데 제도는 여전히 그들을 잠시 왔다 가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다. 최근 독일의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에 ‘한국은 끝났다(South Korea is over)’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11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이 영상은 한국이 2060년경 인구학적‧경제적‧사회문화적으로 붕괴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상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단순했다. 이민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은 스스로 고립된 섬이 될 거란 경고였다.
유튜브 영상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가장 암울한 것은 한국의 정치인 중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란 내용이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의 공약을 훑어봐도 인구 감소나 노동력 공백에 대해 대안을 내놓은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외국인’은 그저 임시방편일 뿐이라 여기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작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5명.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출산율 위기보다 무서운 건 비관적인 현실에 익숙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