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치 지도자 적합도’ 조사의 순위가 바뀌지 않은 지가 한참 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전체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야 각 진영 내에서도 ‘사이다’라 불리는 두 사람이 경쟁자를 멀찍이 따돌리고 맨 위에 서 있다.
일단 내년 4월 총선까지는 이런 구도가 바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야권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경우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의혹’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위증교사’ 등 3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 터라 12월에만 7번이나 법원에 출석해야 하지만 본인은 물론이고 당과 지지자들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그래서 더 열심이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겨야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재판에서 이 대표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지난 9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도 ‘정당의 현직 대표’라는 점이 주요한 불구속 사유로 작용했었다.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 대표라면? 지지율과 차기 대선 당선 전망은 더 높아질 것이다. 본안 재판부의 고민도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본말이 전도됐건 말건 간에 이 대표 입장에선 재판이 선거고, 선거가 재판이다. 지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도 구속영장 실질심사 결과가 큰 분수령으로 작용했었다. 유권자들이라고 해서 이런 구조를 모를 리가 없다.
국회본회의장에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호소하며 제안 설명을 했던 한동훈 장관이 그 대척점에 서 있다. 그 역시 총선 등판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현직 의원이자 1야당의 수장인 이재명 대표는 법원에 출석하느라 바쁜데 현직 법무부 장관인 그는 지난 2주 사이 대구, 대전, 울산을 차례로 방문해 ‘민심’과 소통했다. 그 와중에 야당 강경파 의원들의 날 선 공세도 또박또박 받아쳤다. 아직은 국무위원인 그의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많지만 여당 지지자들의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조선제일검’이라고 불리는 한 장관이 총선판에서도 시원하게 칼을 휘둘러주기를 바란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한 장관에게 뭐든 맡길 태세다.
이재명에게나 한동훈에게나 총선은 어려운 시험대다. 이재명의 총선 전략은 명료하다.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윤석열 정부를 맹공하고 지지자를 결집하며 ‘진인사(盡人事)’하고 정부 여당의 실정과 헛발질을 기다리는 ‘대천명(待天命)’을 하면 된다. 자기 지지층 내에서도 과하다 소리를 듣는 강경파 몇 명을 공천 과정에서 쳐내는 ‘읍참마속 이벤트’까지 더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한동훈 앞의 허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먼저 윤 대통령과의 관계가 그렇다. 지금까지는 윤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이 장관 한동훈의 든든한 뒷배였다. 복잡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장관 자리를 내놓으면 달라져야 한다. 누구처럼 ‘윤심’을 내세우는 호위 무사가 될 순 없다. 야당이 그리고 여당 일부가 바라는 바대로 그가 ‘친윤’의 새로운 수장이 되면 총선 결과는 물론이고 그의 미래도 불을 보듯 뻔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처럼, 이준석처럼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각을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사이의 좁은 길을 찾아야 한다. 지도는 없지만 민심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좋은 차별화’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인 한동훈’의 역할, 미래도 마찬가지다. 최강욱이나 김의겸 혹은 이재명을 지금보다 더 매섭게 때리는 회초리가 되겠다며 지지를 호소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지난 7월 제주도 방문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당시 그는 제주 4·3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의 좁은 사무실을 찾아 “법무부는 상식과 정의를 기준으로 국민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고자 했다”며 “거기에 진영 논리나 정치 논리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다음 날에는 큰 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연사로 나서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에 대해 “북한의 침략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만석꾼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에 이병철, 최종현 회장과 같은 대한민국 영웅들이 혁신을 실현하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대전환의 계기가 됐다”고 상찬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대통령, 조봉암 장관의 농지개혁과 같은 혁신적이고, 공공적인 선의의 정책을 만들고 성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동훈은 제주도의 그때로 돌아가서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