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무슨 사연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노동운동은 좌파 중에서도 좌파로 분류되는 대한민국이다. 나는 노동운동을 하고 있고,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계속 그 길을 걸을 텐데, 세상이 공인하는 보수 언론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게 됐다. 첫 칼럼이다.

42년 전, 1983년이었다. 고위 공무원을 상상하며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길을 걸었다. 국민을 짓밟고 집권한 전두환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짱돌과 화염병을 들고 독재 타도를 외치며 최루탄 속을 종횡무진했다. 그다음에 노동운동으로 무대를 옮겼다. 1988년, 37년 전이었다. 노동자는 산업 역군이라 하면서 실제로는 공돌이·공순이 취급하던 시대였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저임금에 쪼들렸고, 국밥 국물까지 싹싹 닦아 먹어도 돌아서면 허전하던 시절이었다. 노동자가 노예처럼 살아가는 이유는 자본가 계급의 무한 탐욕 탓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노동운동 목표는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공산주의 평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 레닌, 김일성 등의 영향이었다. 선봉대라는 투쟁 조직을 진두지휘했고, 고문과 구속을 훈장으로 여겼다. 그러는 동안 노동자 처지가 바뀌었다. 배곯던 노동자는 외식하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남길 정도로 여유로운 처지가 됐다. 아파트도 소유하고 해외여행도 하고 주식도 보유하면서 자본주의의 동반자가 됐다. 노조의 투쟁을 통해 체제를 전복하려던 시대는 끝났고, 많은 이가 노동운동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노동운동을 떠나지 못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은 높은 임금에 노조 보호를 받는 대기업·공공기관 등의 1차 노동시장과 낮은 임금에 노조 보호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중소기업 등의 2차 노동시장으로 분절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어느 두 청년이 각각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입사해서 60세에 퇴직할 경우, 30년간의 누적 임금 격차는 자그마치 13억원이다. 청년들이 아파트를 구매하려고 영혼까지 탈탈 끌어모으는 판국에, 13억이면 서울에서도 중급 이상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격차다. 청년들이 대기업에 사활을 걸며 구직 몸살을 앓는 이유다. 대기업에 못 갈 바에야 그냥 쉬겠다는 청년이 수십만에 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극심한 교육 경쟁에 내몰린다. 그렇게 해도 다수의 아이는 대기업에 진입할 수 없기에, 아이가 힘든 삶을 살 것 같아서 출산을 주저하는 현상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주요인의 하나로 작동하면서 출산율은 인구 소멸과 국가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곤두박질쳤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동 당사자의 소득 격차뿐 아니라 육아와 교육, 결혼과 출산, 건강과 노후까지 일생의 모든 영역을 갈라놓았다.

한국 사회가 이중구조에 경고등을 켜고 있지만 노사 갈등에 노노 갈등, 사사 갈등, 을들의 갈등, 세대 갈등이 얽히고설킨 데다가 진영 갈등까지 뒤엉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난제를 풀려면 정부와 노동계와 경영계, 특히 재벌까지, 대한민국의 지속성을 고민하며 머리를 맞대야 한다. 보수와 중도와 진보, 너나없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그래서였다. 판을 여는 데 힘을 보태려면, 진보에 갇히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나는 40년간 걸치고 있던 진보 외투를 벗고 경계인이 됐다. 그리고 1년 전이었다. 전태일재단과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특집판을 펼쳤다. 진영 갈등이 부모 자식 관계도 갈라놓는 험악한 나라다. 대표적 진보 단체와 보수 매체의 협업은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한편으로 각계의 격려와 응원이 답지했고, 한편으로 노동계 일각의 질타가 쏟아졌다. 전태일재단에 더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사무총장직을 내려놓았다. 그러고서 2차 노동시장 당사자들과 함께 한국노동재단을 설립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기업의 생산성과 노동자의 일자리와 사회 통합 등 대한민국 성장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성장은 보수가 존립하는 핵심 근거이고 가치다. 보수가 이중구조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대한민국이 주춤하면 기업도 주춤한다. 재벌을 필두로 경영계가 이중구조 개선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조선일보 칼럼을 시작하는 이유다. 조선일보 독자들의 많은 격려와 애정 어린 비판을 바라며, 인사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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