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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47대 대통령이 취임한 20일 전임인 민주당 조 바이든(왼쪽)과 트럼프가 취임식 참석을 위해 백악관을 나오는 모습.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2기’가 시작됐다. 전임 조 바이든은 초라하게 퇴장했다.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잃은 바이든의 민주당은 패배 책임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민주당 재건에 긴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예상한다.

실리콘밸리의 억만 장자 투자자이자 공화당을 지지해 온 피터 틸이 미 대선 전후 한 인터뷰 몇 건을 최근 들었다. 틸은 민주당이 처절히 무너진 이유를 “광신적 좌파의 PC(정치적 올바름)주의에 점령당한 끝에 스스로 붕괴했다”고 요약했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며 남의 생각을 막다니, 너무 모순적 아닙니까. ‘다양성 정치’의 미친 역설이랄까요.”

민심을 멀어지게 한 민주당의 극단적 PC주의는 긴 시간에 걸쳐 자랐다. 승리의 도취감이 양분이 됐다. 민주당은 2008년 대선 때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만들어냈다는 자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승리를 안겨준 흑인 표에 집착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교수가 오바마를 만난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다. “미국 백인 남성의 수명이 마약·음주·자살로 줄어든다는 ‘절망의 죽음’ 현상을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엔 관심이 없어 보였어요. ‘잠깐, 흑인 수명은 늘었다고요? 그 얘기 좀 더 해 봐요’라고 하더군요. 답답했습니다.”

이 답답함은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란 충격적 결과로 이어졌다. 틸은 “민주당이 그때 철저히 무너졌더라면 나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4년 후 바이든이 당선되는 바람에 쇄신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코로나로 혼란스러웠던 2020년 대선 무렵 흑인 인권 운동인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가 확산하자 민주당은 기세를 몰아 소수 인종, 성 소수자 등을 끌어들인 더 강력한 다양성 담론을 구축했다. 그리고 이겼다.

자신만만해진 PC주의는 폭력적이 됐다. 민주당 진영에선 ‘성(性) 중립 화장실’ 등에 반대하면 ‘올바르지 않은 자’로 내몰리기 십상이었다. 할리우드가 대표하는 문화계는 이들의 취향에 맞춰 ‘획일적으로 다양한’ 작품을 쏟아냈다. 틸은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실리콘밸리의 거물들, 그리고 주변의 합리적 진보주의자들이 그즈음 민주당에 질렸다고 했다. “이대로 가다간 나치 역을 흑인 여성이 맡을지 모르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니까요. 정치인들이 미국의 퇴보나 미래 구상을 고민하기는커녕 화장실 분쟁에 힘을 쏟다니, 말이 됩니까.”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2016년부터 공화당을 지지해온 피터 틸이 2022년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테크 행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Gage Skidmore, Wiki Commons

선거 결과는 중도가 판가름한다. 틸의 말을 빌리면 “청년층·이민자 등 새로 유입되는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판세가 움직인다. 통상 보수가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하지만 극렬 분자들이 점령한 미 민주당 진영엔 이들의 새로운 목소리를 받아줄 공간이 더는 없었다. 정권을 빼앗겼던 공화당은 반대로 유연해졌다. 지난 대선 때 구호로 ‘다양성’을 외친 건 민주당이었지만 실제로는 공화당 유세가 훨씬 다양해 보였다. 부통령 후보는 ‘흙수저’ 출신 40대였고, 머스크는 배를 내놓고 뛰더니 스스로를 극우를 뜻하는 ‘다크 매가(MAGA)’라고 불렀다. 흑인 연사 일색에 ‘바른말’로 꾸민 민주당 유세장은 다른 세상처럼 낯설었다. 틸은 “역설적이게도 민주당 쪽이 스타워즈의 제국군, 공화당이 반란군 같았다”고 했다.

베테랑 정치 칼럼니스트 페기 누넌은 무너진 민주당에 이런 진단을 내렸다. “민주당을 점령한 극렬 분자들이 너무 왼쪽으로 간 나머지 (상식적) 진보와 단절돼 버렸다. 이제 다시 상식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의 정치도 극단으로 치달아 합리적 중도 유권자들은 마음 둘 곳을 잃고 있다. 미국과 차이가 있다면, 여야 진영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다음 대선이 언제 치러질지 모르겠다. 지고 싶지 않다면, 미국 민주당의 붕괴 과정을 먼저 연구해 보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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