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해외 ‘직구’로 홍차를 주문해 마신다. 한국 소매점과 가격 차이가 너무 나서 어쩔 수가 없다. 한 통에 4만6000원 하는 프랑스 홍차를 직구로 사면 배송비 포함해도 1만원 이상 싸다. 가격 격차의 가장 큰 이유는 관세다. 홍차 수입할 때 붙는 관세가 40%에 달한다. 한국 녹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번거로워도, 소량 구매라 관세가 면제되는 직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달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대로 ‘관세 전쟁’을 개시했다. 속도·강도 모두 예상을 뛰어넘는다. 경제학자들은 역사 속 수많은 사례를 들어 관세 전쟁이 미국과 교역국 모두를 패자(敗者)로 만들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은 종종 자유무역의 힘을 증명하는 사례로 거론된다.
그런데 ‘자유무역의 아이콘’ 한국의 관세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관세율은 8.6%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한국을 뺀 나머지 나라의 평균은 1.9%에 불과하다. 조사 대상 190국 전체로 봐도 한국 관세율은 상위 30%쯤에 들어간다. 세네갈·탄자니아·모리셔스·마다가스카르 등 저개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국의 높은 관세율은 장기간에 걸쳐 굳어졌다. 관세를 올리라는 농민 단체 등 생산자의 목소리는 큰 반면, 내리겠다고 ‘총대’ 메는 사람은 없어서 생긴 일이다. 정치적 결정이다 보니 경제적 상식과 어긋나는 경우도 많다. 홍차만 봐도 그렇다. 녹차의 경쟁자(대체재)는 홍차보다는 커피일 테지만, 커피 관세는 0~2%로 매우 낮다. 경제 교과서에 무역 장벽의 폐해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소비자의 선택권 감소’다. 한국 음료 소비가 커피로 쏠리는 현상이 우연은 아니다.
쌀은 비합리적 관세의 대명사다. 쌀 농사짓는 농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특히 크다 보니 관세율이 약 500%에 달한다. 초고율 관세로 인한 무역 분쟁을 방지하려 한국 정부는 매년 쌀 40만t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기로 WTO와 합의했다. 한국 생산량의 10% 정도 되고 가공용 쌀로만 가끔 풀리는데도(대부분은 창고에 쌓인다) 농민 단체는 이조차 없애라고 반발한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이들의 ‘표’를 노리고 온갖 보조금을 얹어주는 악순환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많은 과일에도 수십%씩 관세가 붙는다. 지난해 가격이 폭등해 소동이 일었던 사과 관세는 30%로 책정돼 있다. 이마저도 하나 마나 한 얘기다. 검역을 이유로, 사과는 수입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대 수입품인 원유에도 비상식적 관세가 붙는다. 기름 안 나는 나라들은 대부분 원유에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원재료’를 싸게 들여와 가공해 쓰는 편이 정유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OECD 비(非)산유국 중 유일하게 원유에 관세(기본 세율 3%, 일부는 한시적 인하 중)를 부과해 왔다. ‘세수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효성 없는 얘기다. 다른 선진국처럼 소득세·법인세·부가세 비율이 훨씬 커져, 한국의 세수 중 관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대 10%대에서 지난해 2%로 줄었다.
트럼프가 던지는 ‘관세 폭탄’의 원칙 중 하나는 상호주의다. ‘너희가 때리는 만큼 때린다’는 얘기다. 트럼프가 지난 14일 ‘상호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자 많은 미국 매체가 한국을 관세율 높은 나라의 예시로 거론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대미(對美) 수입품 관세는 0.79% 수준으로 매우 낮다”는 보도 참고 자료를 냈다. 이런 논리가 먹힐까. 트럼프는 관세뿐 아니라 부가세·보조금·검역 등 비관세 장벽을 모두 고려해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하고 있다. 기준은 맘대로 정할 것이다. 우리도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한국의 무역 장벽을 트럼프가 이해해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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