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회의장 벽면에 106주년 3·1절을 맞아 '헌법수호!'가 적힌 태극기가 걸려 있다./연합뉴스

각 나라 헌법을 보면 그 나라가 과거 어디서 넘어졌고 어떻게 다시 일어섰나를 짐작할 수 있다. 헌법은 역사 기록 보관소와 닮았다.

독일은 ‘헌법’이란 말 대신 ‘기본법’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1949년 제정된 기본법 1조 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모든 국가의 권력은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20조는 국가의 정체(政體)·주권·권력 분립·정부 구성 원칙을 규정하고 20조 4항에선 ‘이런 국가 질서를 파괴하는 자(者)에 대해 다른 대응 수단이 없을 때 독일 국민은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국민 저항권을 이렇게 헌법에 확실하게 못 박은 사례는 독일뿐이다. 히틀러 나치 시대 같은 헌정(憲政) 파괴와 인권 유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것으로도 불안했던지 ‘기본법 1조의 인간 존엄성과 20조 국가 구성 원칙 등에 어긋나는 기본법 개정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세계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1919년 헌법학의 세계 권위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게 바이마르 헌법이다. ‘노동 3권’ ‘양심적 병역 거부 권리’ ‘예술가의 저작권 보호’ 등 진보적 사상이 망라된 ‘호화로운’ 헌법이었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은 총리가 수시로 교체되는 정치 불안정에 시달렸고 대통령에게 부여한 헌법 48조 비상대권이 히틀러 집권의 문(門)을 열어주는 역설(逆說)을 낳았다. 기본법은 후임 총리를 먼저 선출하지 않고선 현직 총리를 불신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설적 불신임 제도’를 도입해 정치 안정을 이뤘다.

일본 헌법에도 과거 일본이 어디서 넘어졌으며 어떻게 재기(再起)했는가가 드러나 있다. 1930년대 중·일 전쟁을 거쳐 1941년 진주만을 기습한 군국주의(軍國主義) 일본을 ‘천황제(天皇制) 파시즘 국가’로 부른다. 현행 헌법은 패전 후 미(美) 점령군이 제시한 밑그림 위에 제정됐다. 헌법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다.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이 통치한다’는 구(舊)헌법 1조를 바꿔 파시즘 뿌리를 잘라냈다.

경제 부흥과 정치 안정을 가져온 신(新)헌법 조항이 ‘9조’와 ‘66조’다. 9조 1항은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2항은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戰力)은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 교전권(交戰權)은 인정하지 않는다’이다. 일본 우익들이 국가의 거세(去勢)라고 반발해온 이 조항 덕분에 일본은 최소 국방 예산으로 경제에 전념해 50여 년간 세계 제2 경제 대국의 자리를 누렸다. 이 조항은 미국⋅중국 패권 경쟁 시대를 맞아 퇴출(退出)이 시간문제가 됐다.

66조는 ‘총리와 국무위원은 군인이 아니어야 한다’다. 전쟁 전엔 육군·해군 장성이 제복 입은 채 총리·장관이 됐고 이들이 사퇴하면 내각이 무너졌다. 헌병 사령관을 하다 총리로 태평양 전쟁을 이끌고 전후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東條英機)가 대표다. 66조는 국군주의 시대로 퇴행(退行)을 막는 헌법의 과속방지턱 구실을 했다.

미국 헌법은 개정 절차가 너무나 복잡해 개헌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미국 헌법에도 턱이 있다. 대통령 중임(重任) 규제가 없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지휘한 루스벨트 대통령이 4선(選)을 하다 죽자 1951년 헌법 수정조항 22조 ‘누구든 2회를 초과해 대통령을 맡을 수 없다’는 헌법의 턱을 만들었다.

독일과 일본에서 보듯 두 나라 경제 부흥은 정치 안정이 뒷받침해 가능했고, 정치 안정은 헌법의 결함을 적극적으로 보수(補修)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87년산(産) 헌법을 조종할 면허와 능력을 가졌던 대통령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으로 대(代)가 끊겼다. 그 후 대통령들은 오토바이 운전하는 2종 원동기 면허증을 따고 대형 화물 트럭을 몰았으니 나라가 성할 리 없다. 윤석열을 운전석에서 끌어내리고 이재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열쇠는 개헌 가능 선에 육박하는 의석을 가진 이 대표가 쥐고 있다. 그는 ‘시간이 없다. 탄핵에 집중할 때’라고 한다. 나라에 헌법 전문가라곤 유진오(俞鎭午) 고려대 교수 단 한 사람뿐이었던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제헌의회는 트럭 짐칸을 타고 출근해 아침 10시부터 자정까지 헌법 조문에 매달려 6월 1일 헌법 제정에 들어가 7월 12일 나라의 설계도인 제헌 헌법을 통과시켰다. 이 대표는 스스로에게 ‘87년산 헌법을 몰다 추락한 마지막 조종사가 되고 싶은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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