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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 집회 모습. /장련성 기자

2020년 이후 한국의 정치판에서 보수·우파는 번번이 좌파에 패했다. 윤석열이라는 번외의 인물을 내세워 간신히 좌파로부터 정권을 되찾은 우파는 그 이후 연전연패하고 있다. 먼저 지난 총선에서 역대 유례가 없는 압도적 표차로 좌파에 대패했다. 그 열세에서 허우적거리다 비상계엄이라는 극약 처방으로 대통령 탄핵의 국면을 맞았고 우파는 거기서도 지고 이제 새 대통령을 뽑는 세 번째 시험에 들고 있다. 여기서 또 지면 우파는 정치 동면(冬眠) 상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세상은 앞으로 5년 ‘이재명 좌파’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던 지난 3개월여 보수·우파는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이대로 밀릴 수만은 없다는 절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보수 대통령을 구한다는 명분보다 이 세상이 5개의 재판이 걸려 있는 형사 피고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그런 절박감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파면당해 쫓겨난 지난 한 주 서울의 거리는 놀라우리만치 조용했다. 탄핵이 기각되고 대통령이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반탄 열기는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탄핵이 기각되고 대통령이 복귀하는 결정이 내려졌어도 거리는 이렇게 조용했을까? 거리는 좌파의 아우성으로, 정치판은 야당의 욕설로 가득했을 것으로 짐작되고도 남는다. 우파는 재판에서 지고 거리의 투쟁 면에서도 졌다.

국면은 차기 대통령을 뽑는 제3라운드로 이동하고 있지만 탄핵은 이미 옛일처럼 잊히고 있다. 우리 국민의 적응 능력이 뛰어나서일까, 보수의 망각 능력이 탁월해서일까? 탄핵에 성공한 쪽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준비한 듯이 대통령 후보를, 그것도 한 사람으로 거의 좁혀서 본게임에 나서고 있고, 탄핵을 당한 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후보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등판시키려는 여권 내의 움직임이 표면화하자 후보 싸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선거는 겨우 한 달 반 남짓 남았는데 우파는 아직도 우왕좌왕, 좌고우면, 우후죽순, 갈팡질팡 같은 단어들을 연상시키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반해 대통령 탄핵으로 기가 올라 있는 좌파는 대선에서도 승기를 이어가고 있다. 모든 여론조사가 이재명씨의 단독 선두를 가리키고 있다.

보수·우파의 패착은 이번 부산 교육감 선거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대통령의 탄핵이 코앞인데, 그래서 우파의 단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 부산 교육감 선거에서 우파 후보가 둘이 나와 결국 두 사람 다 합쳐서도 좌파에 지고 말았다. 보수는 저 잘난 맛에 산다고 하지만 그래 가지고는 좌파를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런 현상이 이번 대선에서도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국민 여론의 눈총이 따가워 단일화를 하기는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상처, 그리고 단일화 이후의 ‘먼 산 보기’나 불협조 등이 이제까지 범(汎)보수의 작태였음을 감안할 때 ‘말로만 단일화’는 있으나 마나고 하나 마나다.

나는 이번 대선을 민주당의 이재명 대(對) 국민의힘 어느 누구의 대결로 보기보다 좌파 대 우파의 대결로 보고 있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가는 길이 대한민국의 진로와 정체성을 가르는 요소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씨가 당선되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5년 또는 그 이상 좌파의 길로 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재명씨가 출마하면서 내건 ‘진짜 대한민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진짜 대한민국이란 양극화, 즉 분배의 불균형을 없애는 것이고 그것은 곧 공산주의의 또 다른 이론적 배경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이제껏 가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보수·우파는 두 가지 요소가 겸비돼야 이번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 하나는 ‘탄핵 반대 물결’의 부활 여부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며 전국을 누볐던 ‘보수·우파+중도 보수’의 물결과 기운이 되살아나면 이재명 좌파를 저지할 수 있다. 둘째, 단일화가 극적으로 이뤄지고 승자와 패자가 하나가 되어 전국을 누비는 살신성인의 드라마가 연출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것은 좌파 정권이 대한민국에 몰고 올 변화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것이 지난 80년간 우리가 고군분투하며 쌓아 올린 공든 탑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상기하는 작업에서부터 비롯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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