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8회 지방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당시 국힘 지도부가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진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권성동 국힘 원내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 김기현,배현진 국힘 의원. /뉴스1

대선과 지방선거 연패로 좌절했던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에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한 건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부터였다. 2022년 지방선거 때 강서구에서 2.6%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던 국민의힘은 불과 1년 4개월 뒤 같은 지역에서 17.2%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했던 후보자를 대법원 판결 3개월 만에 사면해 그 후보를 다시 공천했다. 그런 오만함과 비상식을 보며 민주당은 “이젠 됐다”며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에 가장 두려움을 느꼈던 순간도 있다. 대선 두달 만이었다.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전원, 장관 10명, 그리고 코로나로 격리된 인원을 뺀 국민의힘 의원 전원과 5·18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합창, 제창 이런 무의미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자신들이 전유하고 싶었던 역사, 보수는 북한 개입설이나 주장하길 바랐던 5·18이라는 전선이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5·18은 지역주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재명은 “국민의힘은 학살 세력의 후예”라는 악담을 할 정도로 당황했다. 보수가 기득권을 지키려 성(城)을 쌓을 때보다 벽을 허물고 광야로 나올 때 민주당은 두려워했다.

지금은 강경파에서 ‘배신자’와 ‘싸가지’로 찍힌 이들 때문에 민주당이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원내대표였던 유승민이 “기득권과 재벌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의 편에 서겠다” “진영을 넘어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2015년 국회 연설이 그중 하나다. 민주당은 박수 쳤지만 속으로는 자기들 밥그릇을 넘보는 보수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유승민은 ‘도전자’가 아닌 ‘배신자’로 찍혀 축출됐고 얼마 못 가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한동훈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 부인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고, 계엄의 밤에 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로 간 한동훈은 배신자가 됐다. 그렇다면 부인 문제를 외면하고 그날 밤 당사에서 우왕좌왕했던 이들이 충신이란 말인가. 계엄과 관련해 배신자 타령을 하려면 그날 밤 계엄 해제 외에 무슨 선택지가 있었는지 답을 내놔야 한다.

이준석은 2021년 당대표 경선 대구 연설에서 “탄핵은 정당했다. 이제는 탄핵의 강을 건너자”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탁했던 정치인이 대구에서 탄핵의 강을 건너자고 한 것은 도박이었지만, 대구는 그를 선택했다. 보수가 영원히 탄핵의 강에서 허우적대길 바랐던 민주당 입장에선 30대 정치인의 도전과 그를 품은 대구의 포용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당대표를 ‘내부 총질’과 ‘체리 따봉’ 집단 구타로 내쫓는 것을 보고서야 민주당은 두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었다.

보수정당은 축출과 배제가 아니라 용기 있게 포용할 때 빛이 났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민주당보다 훨씬 왼쪽에 있던 김문수·이재오·이우재를 영입했다. 이들은 지금 국힘이 명함도 못 내미는 부천·은평·금천에서 당선됐다. 김문수는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던 2004년 총선 때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자신을 그 자리에 앉힌 당대표를 포함해 중진 37명을 불출마시켰다. “죽을 각오로 한나라당을 대청소하겠다”던 김문수를 두고 강경파들은 “역시 좌파”라며 배신자 낙인을 찍었지만, 그의 개혁 공천과 박근혜의 천막 당사가 없었다면 민주당 200석도 가능했던 총선이었다. 자신들의 영입 1순위였던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를 보수 정당에 빼앗긴 것도 민주당에 뼈아픈 순간이었다. 홍준표는 이명박 정부 때 여당 대표가 됐지만 “한국의 주류는 비겁하고 탐욕적”이라며 주류들을 거칠게 다뤘다. 지금도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은 보수정당 초선이던 오세훈이 주도했다.

반골과 도전을 포용하고 그들에게 중책을 맡겨 영토를 확장하던 진취적이고 노련했던 보수정당이 실종됐다. 민주당이 보수를 가장 두려워했던 순간들을 잊은 채 자꾸 성 안으로, 동굴 속으로 도피한다. 선거 패배의 이유를 내부에서 찾기보다 선관위를 향해 돌을 던지는 것으로 자기 과오를 잊으려 한다. 배신자와 싸가지를 몰아낸 청정 정당에는 이제 “이기고 돌아왔다” “대통령 3년 하나, 5년 하나”라는 도무지 해석 불가한 주문(呪文)만이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