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시작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고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이는 미국·러시아 간의 협상을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행사한다는 느낌을 준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이후 계속된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 영토의 20%가량을 러시아에 점령당했다. 민간인과 군인을 합쳐 약 8만명이 사망했고, 향후 10년간 재건 비용이 48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대 피해국이자 당사자이다. 이런 우크라이나를 제쳐놓고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종전을 모색하는 것은 미국이 추구해 온 자유민주주의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3년간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유럽도 이번 종전 협상에서 배제됐다. 가장 큰 문제는 권위주의적 수정주의 국가들에 나쁜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미국·러시아가 합의한 종전 협상 결과가 그대로 반영된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먼저 침공하고도 별다른 손해 없이 전쟁을 끝낼 수 있게 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인근 유럽 국가들에 대해 더욱 호전적인 정책을 취할 것이다. 훗날 다시 침공할 수도 있다. 미국의 안보 공약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영국 및 프랑스와 핵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자체 핵무장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과 북한 역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의 결과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만이나 한국을 침공해도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협상을 원할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받으면 군사적 조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대신 관세를 포함한 경제적 보복으로 대응하겠다며 대만이 더 많은 군사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해왔다. 이런 태도와 정책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 의지를 꺾을 수 있을까?
한반도 공산화를 추구해온 북한의 입장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은 기회로 인식될 수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내내 푸틴과 러시아 지도자들이 전술핵 사용을 위협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또한 우리에 대해 기습적인 도발을 가한 이후 ‘핵 그림자(Nuclear Shadow)’를 이용한 협박을 미국과의 협상에 유용하게 사용하려 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로 미 본토의 안전을 위협할 경우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빨리 북한과 휴전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핵을 가진 국가와는 잘 지내는 것이 좋다“는 말이 현실화된다면 한반도 안보는 더욱 위험하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은 1973년 파리 평화 협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은 북베트남과 협상하고 그 결과를 남베트남이 수용하도록 했다.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이 침공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미국의 말을 믿고 미국과 북베트남 간의 평화 협상안에 동의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다시 침공했고, 미국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베트남은 공산화됐다.
불법적인 침략을 용인하는 것은 더 많은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전쟁을 예방하고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비용을 더 내더라도 미국의 확실한 안전 보장과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확장 억제의 구체적 조치를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아시아판 NATO의 수립을 통해 권위주의 세력들의 위협 의지를 차단해야 한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