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2036년까지 석탄발전소 28기를 폐쇄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석탄발전소 폐쇄가 확정된 7개 지역 가운데 보령시, 옹진·태안·고성·하동군 등 5곳이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이다. 이들 5개 시·군 가운데 4곳은 산업연구원이 개발한 K-지방소멸지수에 따른 ‘소멸위기지역’이다. 석탄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발전소 폐쇄의 충격뿐 아니라 인구 감소까지 겹쳐 지방 소멸의 복합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다.
미국에서 오염 산업 지역을 조사해보니 빈곤한 유색인종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지역에는 이미 다수의 오염 산업이 자리 잡고 있었고, 지역 커뮤니티는 오래전부터 건강·빈곤·교육 문제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런 문제들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복잡하게 얽혀 악화하고 있었다. 이를 ‘누적 영향(cumulative impacts)’이라고 한다.
누적 영향은 오랫동안 복잡한 환경·사회·경제적 압박 요인에 노출된 지역에서 나타나는 ‘과부하 문제’를 지적하는 개념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작년 11월 누적 영향과 관련한 연방 정부 차원의 첫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기후변화가 불확실성이 매우 높고 지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며 과부하가 걸린 지역사회의 누적 영향을 평가할 때 기후변화를 고려하도록 했다.
기후 위기가 소외된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누적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후 위기는 과부하 지역 사회의 누적 영향을 심화하는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흥미롭게도 다양한 환경·사회·경제적 압박 요인들은 공간적으로 서로 모이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연구에서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빈곤, 낮은 교육 수준, 열악한 사회 인프라와 같은 문제들이 공간적으로 특정 지역에, 그리고 특정 인구 그룹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후 위기에 심각하게 노출된 지역사회는 대부분의 경우 기후 위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복합적인 위기에 노출돼 있다. 이렇게 압박 요인이 누적되면 피해를 배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같은 기후 위기 상황에서도 소외 지역과 취약 계층은 더 큰 피해를 본다. 기후 위기의 누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향후 모든 측면에서 극도로 취약한 도시나 지역이 우리 사회에 나타날 수 있다.
국내에서 기후 정의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은 석탄발전소 지역일 것이다. 석탄발전소 지역 또한 오랜 시간 복잡한 환경·사회·경제적 압박 요인에 노출되어 온 누적 영향이 우려되는 곳이다. 오랫동안 발전소가 배출한 대기오염 물질과 온실가스에 노출됐고, 저출생·고령화 및 지방 소멸의 복잡한 사회경제적 압박 요인에도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지역의 근간 산업을 이루는 석탄발전소의 폐쇄는 과부하 지역의 누적 영향을 심화하는 새로운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탄소 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근로자, 농민, 자영업자 등을 보호하고 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을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한다. 석탄발전소 폐쇄가 지역 커뮤니티에 미치는 누적 영향을 완화하고 더 나아가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발전소 폐쇄를 단순한 지역 소득 및 일자리 감소 문제로 보고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지역이 오랫동안 직면해온 사회·인구·경제·보건·교육·교통 분야의 압박 요인과 이에 따른 누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석탄발전소 지역은 누적 영향이 심화해 극도로 취약해질 수 있고, 취약한 지역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실현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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