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다시 읽은 ‘기미독립선언문’은 새로운 울림을 주었다. 의료계 전체의 지지 속에 1년 넘게 투쟁해 온 전공의와 학생들의 울분과 결의가 겹쳤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나를 바로잡는 데 있을 뿐, 결코 남을 헐뜯는 데 있지 아니하도다”란 대목에서 숨을 멈췄다. 남을 원망하고 배척하는 게 아니라 나를 바로잡는 자기 성찰이 독립선언서의 가치였음을 새롭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료계에 어른은 없나?”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으면서도 말을 아껴왔다. 잃을 것 없는 기성세대의 침묵, 동료를 겁박하는 제자들을 타이르지도 못하는 비겁한 눈치 보기라는 질타도 견뎌왔다. 더욱이 ‘교수들은 착취 사슬의 중간 관리자’라는 모욕도 견뎌왔다. 선배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누적되어 온 의료 수가, 의료 사고, 일방적 규제 등 의료 폐해를 리셋하려는 젊은 세대의 용기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평생 동안 일궈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의료’가 통째로 무너지고 있다. 암 환자 수술은 연기되고 응급실 뺑뺑이는 더 심화됐다. 의·정 갈등 이후 입원 환자 사망률은 코로나 기간을 포함한 과거 기간보다 훨씬 높다. 의학 교육은 멈춰 섰고 의학 연구도 활기를 잃었다. 더군다나 자식·손자뻘 젊은이들의 자기희생을 더 방관할 수는 없다. 이에 의대생들의 복학과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를 간곡히 호소한다.
다행히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사과도 있었고, 교육 당국의 2026년 모집 정원 원점 회귀를 시사하는 발표도 있었다. 전공의 7대 요구 사항 중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엉켜버린 실은 인내심을 갖고 한 가닥씩 풀어야 한다. 조급하면 실이 더 엉켜버려 결국에는 가위로 잘라야 한다. 잘려버린 실을 묶어 이으면 매듭이 남아 쓸 수 없게 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기회의 창이 항상 열려 있지 않다는 사실도 되새겨야 한다. 이미 당‧정 내에서 이견이 있고 어떤 정치 세력도 의사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정치권이 상대를 공격할 때 또는 선거 때 득표 대상으로 의사를 이용할 뿐이고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의사는 온갖 기득권을 누리는 사회적 강자란 인식 때문에 항상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 초기 ‘의사 악마화’의 프레임도 이런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6·25 전란 이후 최대 위기다. 트럼프 집권 이후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불확실성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국내는 탄핵 정국으로 국민이 둘로 나뉘어 세 대결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은 국민의 갈라진 마음을 통합할 만한 역량도 의지도 없다. 일부 의사는 정치권이 우리 눈치를 볼 때 더 밀어붙여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의사들의 단합된 힘을 통해 모든 요구가 관철되었을 때, ‘집단 이기주의’ 대표 직군으로 사회의 비판과 모든 정치 세력들은 소위 의사 특권 무력화를 경쟁하듯이 정책화할 것이다.
정부가 먼저 의대생 교육 대책을 제시하라는 의료계 주장은 타당하다. 증원이 안 된 대학도 의예과 1학년은 두 배가 되고 대규모 증원을 한 대학은 네 배가 된다. 이번 의대 정원 증원은 과학적 근거나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절차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교육 능력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금년에 의학 교육 정상화가 되지 않으면 내년에는 모든 대학의 1학년 교육이 불가능하다. 불이 났을 때 집주인은 방화범을 찾기보다 우선 불을 끄려고 한다. 의료계와 대학, 그리고 정부가 힘을 모아 의학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의·정 갈등의 해결책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결국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고, 국민의 이해가 정치권을 움직인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타협이 실종되고 적을 꺾어 묻어 버려야만 내가 사는 국론 분열의 한가운데서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설득하는 민주주의 기본을 실천하는 후배들의 지혜로운 용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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