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회동하면서 충돌하던 모습. /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회동하면서 충돌하던 모습. /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수트 미착용 여부를 두고 전세계가 시끄럽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및 수뇌부와의 면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수트 착용을 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군대를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 없다”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미국 정치인 및 언론인들로부터 곤욕을 치루었고, 제대로 얻어낸 것도 없이 빈 손으로 백악관에서 쫓겨났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상회담급 자리에서 상대방 대통령에게 부통령과 언론인이 복장을 지적하는 것이 온당한가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를 숭상하는 미국에서 수트를 안 입었다고 자세 운운한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은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은 왠만한 직장에서 수트를 입는 경우가 흔치 않다. 댓글을 봐도 미국 정치인들과 언론인이 선을 넘었다, 무례했다는 반응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2014년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의 IS에 대응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할 때 밝은 황갈색 정장을 입으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만한 심각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데 너무 캐주얼한 복장을 착용함으로써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라는 의미의 time, place, occasion의 약자)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3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유시민 의원이 흰색 면바지에 라운드 티셔츠, 남색 캐주얼 재킷을 입고 본회의장에 등장한 것이다. 당연히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그의 패션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을 크게 자극해 결국 30여명이 집단 퇴장하는 촌극을 빚었다.

정치 영역은 어느 곳보다도 보수적인 곳이다. 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며, 찰나의 실수로 큰 곤경에 빠질 수 있다. 그렇기에 몸가짐, 마음가짐 하나하나 어느 곳보다도 신중해야 한다. 복장은 자세를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상징이다. 국가간 정상회담이었다 해도 세계 최강국 미국과 전쟁통의 우크라이나는 같은 급이 아니다. 자국의 군대와 같은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겠다는 젤렌스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의 의지는 명료했으나, 영리하지는 못했다.

도움을 받으러 온 그는 복장으로 트럼프 정부의 호감을 샀어야 했다. 복장부터 트럼프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면서 둘의 대화는 말싸움으로 치달았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대체로 을의 위치에 놓인 이들의 복장이 보다 보수적이다. 영업사원이 대표적이다. 갑이 깐깐한 눈으로 을의 자세와 말투, 외모를 따져보기 때문이다. 갑을관계나 조직적 위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자영업자나 연예인의 복장은 훨씬 자유분방하다. 정치 지도자들 역시 본인이 을인 경우도 많고, 타인으로부터 협력이나 도움을 구해야 할 처지가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복장은 그 자체로 중요한 메시지를 담는다. 가령 제멋대로 입는 정치인들은 대체로 제멋대로 행동한다. 수트 역시 우리 식대로 입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표적이다. 미국에 도움을 청하는 위치였던 젤렌스키는 이 점을 기억했어야 했다.

이득규 맨체스타양복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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