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

현행 헌법의 미비점이 정치권의 욕심과 결합해 나타난 대혼란이 현재 한국 정치 상황이다. 3번에 걸친 대통령 탄핵소추 경험에도, 제도의 결함에 대해 개선책이 없다면 무질서는 반복될 것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와 관련된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통령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본다.

우리 대통령제의 기원인 미국은 1787년 헌법 제정 때부터 부통령제를 도입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가 같이 출마해, 국민의 선택을 받아 같이 당선된다. 선거에서 선택됐기에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바로 승계해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우리처럼 60일 내에 대통령 선거를 거칠 필요가 없다. 국가 리더십의 중단이 없으므로 대통령의 유고나 탄핵소추가 국가 위기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우리도 이승만 정부에서 미국과 같이 부통령제를 택했다. 제헌 헌법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 후 1952년 개헌으로 국민이 대통령과 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제1공화국에서는 미국의 러닝메이트제와는 다르게 대통령과 부통령이 별도로 선출됐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정당 소속이거나 정치적 대립 관계이기도 해서 갈등이 있었다. 결국 이런 모순점이 4·19혁명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제2공화국에서는 내각책임제를 선택했다. 당연히 부통령이 필요 없어 대통령만 국회에서 선출했다. 박정희 정부에서는 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무총리로 대신하는 방식을 택했다. 절대 권력자가 2인자를 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 그 배경일 터이다. 1987년 개정한 현행 헌법도 부통령이 없는 제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987년 헌법 개정 시 여러 헌법학자가 부통령제 도입을 논의했으나,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주요 후보가 부통령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자 군사 강국으로 선진국 초입까지 온 오늘의 한국은 부통령이 필요하다. 헌법상 부통령제를 도입해 대통령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국민 전체가 대혼란을 겪으며 극도의 국론 분열을 야기하는 상황을 막아야 할 것이다. 미국을 보더라도 1974년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고 포드 부통령이 승계한 것처럼, 대통령직의 위기 상황에 부통령이 있으면 그 리더십이 바로 이어지는 장점이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 집권당 총리가 중간에 바뀌더라도 국민에게 큰 충격이 되지 않는 것처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우리도 정치 위기를 재판이 아니라 정치로 해결하기 위해 개헌 시 필수적으로 부통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부통령제를 도입하더라도 또다시 탄핵소추를 하면 마찬가지 아니냐고 걱정할 수 있다. 원래 탄핵소추 시 직무 정지 조항은 미국과 주요 유럽 국가에 선례가 없다. 제2공화국에서 대통령을 견제하려고 처음 넣은 조항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만으로 직무를 정지시킬 게 아니라, 독일처럼 연방헌법재판소가 심리해 직무 정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정치 혼란을 피하는 방법일 것이다.

스티븐 레비츠키 말대로 권한이 있더라도 자제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제도가 문제 있는 상태에서 정치인들의 선의만을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가 아닐까.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력과 국방력을 가진 강중국(middle power) 시민이 위와 같은 제도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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