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로 정의한다. 정신 건강이란 개인이 삶의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자신의 능력을 실현해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최근 정신 질환과 관련해 대중의 관심은 범죄와의 연관성이나 유명인의 마약 사건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마약 중독은 범죄로만 볼 것이 아니다. 치료와 재활이 필수적인 질환이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의 치료 인프라가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마약 치료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부곡병원은 정작 인력 부족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환자를 돌볼 전문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립부곡병원은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 있다. 수년 전 폐업한 ‘부곡 하와이’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도 많다. 그러나 국립부곡병원을 주목해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5개 국립정신병원 가운데 유일하게 약물중독진료소를 운영하는 국가 지정 중독 치료 전문 기관이라는 점이다. 1997년 개설된 국립부곡병원의 약물중독진료소는 약물 중독의 고통과 불안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 약물 중독 치료는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점점 더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전문성을 갖춘 의료진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미래 의료의 핵심 분야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마약류 투약자는 약 4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부가 운영하는 마약류 치료보호기관 31곳 중 상당수가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관은 치료 실적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국립부곡병원은 지정 병상 90개를 갖추고 있지만, 의사 부족으로 인해 충분한 치료가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는 정부의 지원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올해 마약 중독 치료 예산이 증액됐지만, 치료보호기관 운영 지원 예산(9억원), 우수 치료보호기관 지원 예산(3억원), 치료보호기관 환경 개선 예산(5억원)이 동결됐다. 마약중독자 1인당 치료비로 약 900만원이 필요하지만, 책정된 예산은 6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예산과 지원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국립부곡병원에 전문의가 부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현재 국립부곡병원은 전문의 2명,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공보의) 1명으로 정보 공개가 돼 있다. 약물중독진료소만 본다면 지정 병상이 90개에 달하지만, 전문의는 기관장 단 1명뿐이다. 의료진에게 다양한 약물중독의 치료 경험, 전문 인력과 함께 연구할 기회가 주어져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정작 중독 치료에 집중할 전문의는 부족하다.

마약 중독 치료는 처벌로만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예방과 치료, 재활, 일상 회복을 아우르는 정신 건강 혁신의 미래는 국가 기관인 국립부곡병원 약물중독진료소가 제 역할을 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국립부곡병원이 대한민국 마약 치료의 중심이 되려면, 전문의 확충이 최우선이다. 정부는 마약 문제 해결을 외치기 전에 이를 담당할 정신과 전문의 채용과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적극적인 관심도 필요하다. 이곳에서 함께하며 ‘영웅’이 되어줄 약물중독진료소장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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