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경제의 핵심 사안은 관세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관세 논쟁은 이제 국가 간 무역 전쟁으로 번지는 중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 늘 혁신이 있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듯 이번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최근 미국 CNBC는 관세 인상으로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온라인 중고 거래, 즉 리커머스(recommerce)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올해 1월 진행된 미국의 중고 거래 업체 비드온이퀴프먼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관세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 때문에 소비 습관을 바꿀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46%는 중고 제품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가 소비 행태에 변화를 일으키는 중이다.
리커머스 산업은 관세 논쟁 이전부터 이미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스태티스타는 미국의 리커머스 규모가 2023년 약 269조원에서 2029년 약 416조원으로 성장한다고 예측했다. 국내 리커머스 역시 성장 중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올해 중고 거래 규모를 약 43조원으로 예측했다.
리커머스 산업 성장은 단순히 가격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양적 성장 배경에는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 행태 변화와 업계의 신기술 도입이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가성비’는 물론,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온라인 거래 플랫폼의 발전으로 제품 선택 폭이 넓어졌고,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기업 또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정품 인증 시스템이나 RFID, 블록체인을 적용한 제품 이력 관리 시스템으로 중고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 변화를 이끌어 냈다.
리커머스 산업의 양적, 질적 변화는 유통 산업의 종전 질서를 바꾸고 있다. 제품의 선형적 수명 주기는 순환적 주기로 전환되고 있다. ‘N차 사용’ ‘소유가 아닌 경험’이라는 새로운 소비 개념도 정립되었다. 소비자와 판매자의 경계가 흐려져 필요에 따라 구매자이자 판매자가 될 수 있으며, 제품 사용 이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주요국은 리커머스 산업 육성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EU와 일본은 중고품에 ‘마진세’를 적용, 세금 부담을 낮췄다. 프랑스는 사용 중인 제품을 수선 시 정부가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수선 보조금 제도’를 시행 중이다. 미국은 업계 주도로 중고품 매출세 폐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다. 중고품 이중 과세에 대한 논의조차 미미하고, 거래 증빙이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는 업계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부담은 기업과 소비자가 고스란히 받는다.
그럼에도 국내 리커머스 산업은 성장을 이어가며 수출에도 기여한다. 중고 포토카드, 응원봉 등 기념품의 해외 수요가 증가 중이고, 엄격한 품질 관리와 정품 인증 시스템으로 한국 중고품 선호도도 높다. 한국 중고품의 희소성과 프리미엄이 부각돼 수출도 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산업을 발굴, 육성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리커머스 산업은 단순한 소비 동향을 넘어, 환경과 경제를 모두 살리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정부의 과감하고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