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문재인-바이든 첫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엔 ‘인권(human rights)’이란 단어가 네 차례 등장한다. 그중 ‘북한 인권’은 한 번 나온다.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데 동의한다.” 어떤 비판에도 북한 인권에는 침묵했던 현 정부로선 이례적이었다.
그런데 바로 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기로 약속했다”는 문구가 이어진다. 한 외교 관계자는 “김정은의 인권 탄압을 정면으로 제기하는 모양새를 피하고, 대북 대화 재개 구실도 마련하겠다며 한국 정부가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양국 간 문안(文案) 조율에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대만해협’ ‘남중국해’ ‘쿼드’ 등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 표현까지 망라된 이번 공동선언문을 두고 ‘한미 동맹의 복원’이란 찬사가 나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미 양쪽에서 ‘이면을 보니 양국 이견(異見)이 만만찮아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으로 한미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슈가 인권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의 인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권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나. 무(無)결점의 가치로 동맹 국가를 결속한 뒤 북한·중국·러시아 등 상대 진영 전체를 도덕적 우위에서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인도·태평양, 쿼드보다 상위 개념이고 범위도 넓다.”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을 ‘폭력배(thug)’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살인자(killer)’라고 부르면서 연일 ‘인권’을 꺼내 드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인권 변호사’ 문 대통령과 현 정부의 인권 범위는 이보다 좁고 선택적이다. 정권 초부터 청와대는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큰 글씨로 문 대통령을 인권 변호사라고 소개하면서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을 열거했다. 그러나 북한 문제에서 문 대통령의 인권은 작동하지 않았다. 현 정권은 목숨을 걸고 탈출한 탈북민, 탈북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잇따라 끊었다. 북한 김여정의 ‘경고’ 직후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밀어붙였다. 이번 회담에서도 “북한 인권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북한과의)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미국에 주장했다고 한다.
중·러, 이란 이슈 등에 정신이 없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하려는 미국과 이를 제지하려는 한국 정부 간 입장 차가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말 북한 인권 문제에서도 태도를 180도 바꿔 국제 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상상을 해봤다. 국제 외교에서 한국이 또다시 올바른 방향을 선언한 것이란 평가가 역사에 두고 남을 것이다.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강제 노역, 구타와 고문, 공개 처형의 현실은 잊은 채 현 정권은 또다시 ‘남북 대화’에 목을 매고 반대로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