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대만 남부 과학단지 18공장의 업무동. 오사카성을 본떠 돌로 쌓은 성벽 위에 건물을 지었다. TSMC는 공식 석상에서도 이 건물을 ‘TSMC 오사카성’이라 부른다./타이난=이벌찬 특파원

“이 건물이 ‘TSMC 오사카성(台積大阪城)’이에요.”

지난 16일 대만 타이난시의 TSMC 18공장(2019년 가동)에서 만난 엔지니어 천씨는 사무동을 가리키며 “난공불락 요새인 일본 오사카성을 본떠 돌로 쌓은 성벽 위에 건물을 지었다”고 했다. 사무동을 둘러싼 호수인 TSMC자밍호(台積嘉明湖)는 오사카성의 해자(垓子·성 밖에 판 도랑)를 연상케 했다. 오사카성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1583년 오사카에 지은 거대한 성이다. 일본 문화에 우호적인 대만에서는 일본의 유명인이나 유적지 이름을 차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TSMC가 건물에 ‘오사카성’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1위를 오사카성처럼 견고하게 지키겠다는 의미다. TSMC는 1987년 설립 초기 ‘가상 공장’(virtual fab)이란 콘셉트를 내걸고 반도체 설계 회사들을 찾아가 ‘우리를 하청 공장처럼 여기고 써달라’고 부탁했다. 실리콘밸리가 TSMC와 손을 잡았고, TSMC는 인력·자금·설비를 아끼지 않고 반도체 생산 기술을 높였다. 그렇게 축적한 노하우와 기술이 TSMC를 압도적인 1위로 만들었다.

이제 TSMC는 반도체 제조사를 넘어 대만 안보를 떠받치는 기업이란 평가를 받는다. 반도체의 성능 향상이 ‘설계’보다 ‘생산 기술’에 좌우되고, 모바일 시대에 첨단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TSMC가 을에서 갑이 됐기 때문이다. 중국도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에 동조한 TSMC를 응징하기는커녕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일본 또한 지난해 TSMC 공장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유치했다. 세계 최첨단 반도체(10나노 이하)의 92%는 대만(TSMC)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대만에서 만난 TSMC 관계자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나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 같은 말은 외부에서 마음대로 하는 말”이라면서 “우리는 비용 절감과 서비스 품질 향상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다. 충실한 ‘을’로서 성공한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이 국제정치에서 플레이어로 언급되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TSMC 전 임원은 “TSMC는 광고도 하지 않는 로 키(low key· 낮은 자세) 기업”이라면서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TSMC는 오사카성도 결국 무너졌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오사카성은 161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도입한 신형 장거리포로 공격하자 버텨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TSMC는 삼성을 비롯한 경쟁사가 첨단 기술이란 ‘신형 무기’를 개발할 것을 우려하면서 낮은 자세로 성을 지키는데 소홀히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