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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미국 워싱턴 DC 타이들 베이신에서 시민들이 벚꽃을 구경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매년 이맘때면 워싱턴 DC 곳곳에 벚꽃이 만발한다. 그리고 한국인 사이에선 오래된 이야기가 습관처럼 회자된다. 1912년 도쿄 시장이 미·일 우호의 상징으로 벚나무 묘목 3000여 그루를 선물한 이래 봄마다 이를 로비에 활용하는 일본에 관한 얘기다. 춘삼월 수도를 물들이는 벚꽃은 일본의 소프트 파워를 상징하는 것처럼 됐고, 미 전역에서 약 150만명이 모이는 벚꽃 축제는 대미 공공 외교의 우수 사례로 꼽힌다. 올해도 일본 대사관뿐만 아니라 기업·문화원 등 민관이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외교가에선 미·일 동맹의 오늘과 내일을 얘기하는 이벤트가 줄을 잇는다.

이야기는 대개 ‘한국은 뭐 하나’로 결말을 맺는다. 그런데 꼭 자책만 할 일은 아니다. 우리도 괄목상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서 있던 장면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선물 보따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기업인 중에선 웨이저자 TSMC 회장, 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 등 소수만이 누린 특권이다. “현대는 위대한 기업” “허가를 받는 데 문제 생기면 찾아와라”는 트럼프의 말에 우리도 누군가와 사진을 찍는 수준을 넘어 정책이나 법을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실감했다. 이를 지켜본 미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은 아니다. 3년 전 인플레 감축법(IRA) 쇼크 이후 웬만한 대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워싱턴 DC에 사무실을 차렸다. 전관을 영입하고,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며 시행착오를 거쳤고 상당수는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현대차만 해도 정보를 깨알같이 담은 홍보 자료까지 동원해가며 1986년 미국에 진출한 이래 어떻게 사회 일원으로 기여했는지를 설파했다. 꼭 트럼프만 바라보고 로비를 한 건 아니다. 미국은 연방 정부만큼이나 의회, 그리고 각 주(州)의 권한과 자율성이 큰 나라다. 이번에 현대제철이 제철소를 짓기로 한 루이지애나가 공화당 실력자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스티븐 스컬리스 원내총무의 지역구인 게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미 영향력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다 보니 로비 업체들이 즐비한 곳에선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은 올해 초 자기 회사를 차린 뒤 제일 먼저 한국을 찾았다. 몇 년 새 한국 기업이 쓰는 돈이 급증해 한국 돈을 눈먼 돈처럼 여기는 이들도 생겼고, 철 지난 인맥을 들먹이며 무언가를 도모해 보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국내 정치 상황이 불확실하지만 트럼프가 고개를 돌려 한국을 겨냥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기업 할 것 없이 누가 옥석을 잘 가리느냐에 성패가 갈린다.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순간이 임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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